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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함께’ 또 ‘따로’인 인간 조건

등록 2006-01-08 15:34수정 2006-01-09 15:17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

선상봉기 승리 뒤편 외로운
죽음학살 현장서 홀로 구르는 유모차
공존과 고립, 연대와 소외의 틈새
영화 고전이 파놓은 철학적 심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년)은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이미지들은 인간 조건의 본질을 드러나게 해준다. 바로 여기에 다른 예술 장르와 다른 ‘사유-이미지’ 제공자로서 영화의 역할이 있다.

<전함 포템킨>은 처음부터 인간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자 동시에 각 개인으로서 ‘따로’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우리는 전함의 내무반에서 잠든 수병들을 본다. 그들은 공중에 매달린 흔들이 침대에 각자 잠들어 있다. 마치 요람 속 아이 같다. 이런 흔들이 침대들이 내무반을 꽉 메운 이 경탄할 이미지는 ‘함께’와 ‘따로’라는 동시성의 인간 조건을 은유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여기서 이미 영화가 어떤 견인 에너지를 갖고 진행될지를 보여주며, 요람 속 아이 같이 잠든 수병의 이미지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모든 것을 전복시킬 어떤 장면을 예견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처우와 명령에 불복종하는 수병들과 이를 진압하려는 함장 및 장교들 사이에서 전투는 벌어지고, 수적으로 우세한 수병들은 그들을 제압한다. 수병들이 선상에서 승리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막상 전함의 한쪽 끝에서는 봉기를 주도했던 수병 바쿨린츄크가 총을 든 악질 장교에게 쫓기고 있다. 수병들이 반란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반면, 이 광경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궁지에 몰린 수병은 장교의 총에 맞아 죽는다. 집단의 소란 속에 홀로 떨어진 개인이 있는 것이다.

오데사 항구 부두, 바쿨린츄크의 주검이 홀로 작은 천막 안에 누워 있다. 그러나 선상 반란의 소문은 오데사 시민들에게 퍼져 나가고 한 사람, 두 사람, 반란 속에서 홀로 숨진 영웅을 조문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일종의 ‘산사태 효과’를 보여주면서 각자 ‘따로’의 존재가 어떻게 거대한 ‘함께’를 이루는지 보여준다. 천막 앞에 쉴새없이 불어나는 조문객들, 어느 한 곳을 향해 오데사 시의 거리를 메우면서 행진하는 시민들, 끝간데 없는 방파제를 따라 모여드는 사람들, 고풍의 건물들을 미로처럼 연결하는 지그재그 계단을 마치 골에 물이 흐르듯 걸어 내려오는 군중들, 그리고 마침내 부두로 이어지는 광장 같이 넓은 중앙 계단에 집결해서 전함에 응원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순간 이 모든 연대와 평화의 풍경을 찢는 총성이 울린다. 오데사 계단의 맨 꼭대기서부터 사람들의 절규와 질주가 시작된다. 부두를 바라보고 밀집한 군중들의 후미를 정부군이 공격한 것이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계단 아래를 향해 넘어질 듯 뛰어가고, 총에 맞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뛴다. 그 뒤를 일렬 횡대로 사격하며 진군하는 병사들의 군화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쓰러진 사람들을 짓밟으며 계단을 내려온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 여인이 유모차에 탄 갓난아기를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죽는다. 홀로 남은 아기는 유모차 속에서 이 절대 혼돈의 상황을 감지하지 못한 채 천진하게 누워 있다. 유모차는 계단에 잠깐 걸려 있는 듯 하더니, 이내 계단 밑으로 구르기 시작한다. 주위의 모든 소란은 아랑곳없이 계속 구른다. ‘함께’에서 벗어나 ‘따로’ 구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의 사람들이 총탄에 쓰러지며 질주하는 소란 속에 있으면서도 유모차는 오히려 망망대해를 홀로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 같다. 아니면 지옥 같은 소란을 일격에 가르고 모든 시선과 숨소리를 고정시키는 조용한 혁명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아비규환 속의 평온한 행진이라고 할까, 아니면 이 분화된 운명에 대해 체념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할까. 영화의 이미지는 유모차가 구르다가 넘어졌는지 아니면 무사히 계단 밑까지 당도했는지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애처로워 하는 타인의 시선에 무심한 채 홀로 넘어질 듯 구르고 있을 뿐이다. 주위의 모든 빠름 속 느린 그림 같은 이 이미지는 그런 흐름의 영속성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공존과 고립, 연대와 소외, 집단과 개인 같은 사회철학의 주제들은 이 처연한 이미지가 파헤쳐 놓은 철학적 심연 앞에서 무색해지고 만다. <전함 포템킨>의 사유-이미지는 우리를 항상 전율하게 만든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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