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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불안과 두려움을 돌파하려면

등록 2020-04-13 18:20수정 2020-04-14 02:38

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돌파하는 데는 ‘삶의 기세’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불안과 두려움은 생존을 지속하게 하는 경고음이라 말하지 않아도 모두 몸으로 느끼니, 굳이 일부러 말해야 할 것은 삶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돌파하는 데는 ‘삶의 기세’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불안과 두려움은 생존을 지속하게 하는 경고음이라 말하지 않아도 모두 몸으로 느끼니, 굳이 일부러 말해야 할 것은 삶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큰아이가 첫 입원을 했을 때다. 무슨 검사를 받으러 다른 건물에 있는 검사실을 찾아가야 했다. 나는 휠체어 밀랴, 낯설고 복잡한 길을 찾아가랴 주변을 살피지 못한 상태였다.

낑낑대며 겨우 목적한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난데없는 호통이 들렸다. “거기 문 좀 닫고 다니지 못해!”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어르신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병동 사이를 막은 문을 미처 닫지 못하고 지나왔던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하며 황급히 문을 닫으면서 보니 성인 암병동이었다. 찬 바람도, 외부 공기도 위협적일 만했다. 복도에는 그 어르신 말고도 두세 분이 무표정하게 우리를 보고 계셨다. 서둘러 병동을 빠져나온 나는 큰 숨을 훅 내쉬었다. 그 병동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무거운 침묵의 기운에 눌려 나온 한숨이었다.

그에 비하면 소아 암병동은 암병동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란스럽고 활기가 넘쳤다. 병실에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하이 톤의 동요와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항암제 링거를 꽂고도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다음 끼니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궁리했다.

가끔 대학생이나 단체에서 청년들이 찾아와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고, 매주 놀이치료를 해주던 전문가 선생님도 계셨다. 물론 감염관리가 최우선이라 손소독제와 살균 분무제를 뿌린 후 마스크와 멸균장갑을 낀 채 이루어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덕에 엄마들은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다. 놀이를 끝낸 아이들의 얼굴엔 피곤했지만 늘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병동이 유난히 조용하면 의료진과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상태가 안 좋구나’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우리 애가 게임도 안 해요” “맛있는 것도 안 찾아요”라는 말은 그만큼 심각하게 아프다는 말이었다. 병원에서는 아이들이 입원 중에도 놀이와 학습을 이어가도록 애썼는데, 이는 학습이나 발달의 결손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통증과 불안을 이기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란 걸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도 발열과 신경통증에 시달릴 때 보드게임을 하면서 몰입하고 웃던 중에 스르르 나았던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우리 집에서 만병통치 약방문은 ‘아플수록 놀아야 한다’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불안 시국을 통과하면서 치료와 방역, 격리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아이들의 활기를 지켜주려고 애썼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돌파하는 데는 ‘삶의 기세’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불안과 두려움은 생존을 지속하게 하는 경고음이라 말하지 않아도 모두 몸으로 느끼니, 굳이 일부러 말해야 할 것은 삶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일부러 명랑하고, 일부러 따뜻하기. “용기 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영혼 속에 공포의 감정을 결여한 사람이거나 이를 단번에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여주려는 게 공포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사람이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불안과 두려움은 각자 가슴에 잘 품을 일이다. 서로 위로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어느덧 용기가 되어버린 이 시절을 어떻게든 잘 살아내려면 말이다.

김경림 ㅣ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언어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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