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엄마, 이가 빠졌어요.”
화장실에서 이를 닦던 늦둥이 진형이 녀석이 제 엄마를 소리쳐 부른다. 아내가 화들짝 놀라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에 하얀 이를 들고 나온다. 며칠 전부터 이가 흔들린다고 울상이더니, 마침내 그 이가 빠진 모양이다.
“아빠, 내 이 좀 보세요.” 녀석이 이를 내 눈 앞에 들이밀며 종알거린다. 이가 빠진 녀석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진형이는 아홉 살인 우리 집 막내다. 큰아이가 스물한 살이니, 녀석과는 열두 살 차이가 난다. 띠동갑인 두 녀석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베개 싸움을 하며 노는 두 녀석을 보고 아내는 이렇게 웃곤 한다.
“이건 완전히 하향 평준화예요. 큰녀석이 진형이한테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니까요.” “큰아이는 하향, 늦둥이는 상향인 셈이지. 결국 한쪽은 손해고 한쪽은 이익이니 공평한 거요.” 나도 웃으며 대꾸를 하곤 한다.
“빠진 이는 지붕에 던져야 하는데.” 제 형의 말에 진형이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알댄다. 제 형이, 내가 너만했을 때는 우리 집이 한옥이었는데, 지붕 위에 이를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는 너 갖고 새 이는 나 다오.” 했다고, 그래서 새 이가 나왔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자 녀석은 잠시 울상이더니, 빠진 이를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종이에 정성스레 싼다.
“내 보물이야. 잘 가지고 있다가 보리소골에 가서 산에 던질 거야. 그럼 새 이가 잘 나올 거야.”
보리소골은 내 고향 마을이다. 주말이면 내려가 얼치기 농사를 짓는 나를 따라 자주 보리소골에 가곤 했던 진형이는, 새들이 새 이를 가져다준다는 말에, 보리소골에 사는 수많은 새들이 생각났나 보다. 그 뒤 녀석은 서너 개의 빠진 이빨을 제 책상 서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시기에 소중히 간직한 보물이 한가지씩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 늦둥이 진형이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아마도 빠진 이빨인가 보다. 더 나이가 들면 녀석은 무엇을 소중한 제 보물로 삼게 될까? 쉰 줄을 코앞에 둔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얼마나 마음의 보물을 만들며 살아왔을까? 빠진 이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늦둥이 진형이를 보며 나는, 녀석의 삶 굽이굽이가 그 나이에 맞는 숱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기를 빌어본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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