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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외롭고, 높고, 우스운 외줄타기

등록 2006-01-15 18:35수정 2006-01-16 14:44

외줄 위에서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떠돌이의 고통스런 모습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타인의 비극을 즐기는 인간 관계의 냉혹함은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유발하는 희극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외줄 위에서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떠돌이의 고통스런 모습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타인의 비극을 즐기는 인간 관계의 냉혹함은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유발하는 희극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외줄에 오른 꾀죄죄한 떠돌이
안전띠 풀리고 위기 빠질 때
관객은 포복절도 자지러진다
‘소외’가 빚어낸 기묘한 희극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채플린의 <서커스>

오늘 우리가 보고 즐기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은 대개 191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제작된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서커스>(1928년)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성영화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작품은 희극성의 정수를 보여주며, 채플린의 이름과 함께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저 작고 꾀죄죄하며 외롭고 이름 없는 방랑자, ‘떠돌이’(the Tramp)의 전형을 보여준다.

채플린은 <서커스>를 구상하면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나를 몰아넣는 개그”를 하고 싶다고 동료에게 귀띔한 적이 있다. 출구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고립된 자아라는 설정에서 ‘익살극+서스펜스’라는, 아주 독특한 ‘드라마 같은 희극’이 탄생된 것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바로 그런 극단의 상황이라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그 앞뒤에 이야기가 붙여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커스 단원이 된 떠돌이는 단장의 딸 머나에게 연정을 품는다. 하지만 그녀가 젊고 잘 생긴 외줄 타기 곡예사 렉스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경쟁심에서 어느 날 렉스가 없는 사이 자신이 외줄 타기 공연을 하게 된다. 그것은 목숨을 건 시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미 외줄 위에 올라 선 떠돌이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 불가능의 상황에서라도 목숨을 걸고 공연을 끝내는 수밖에….

대형 천막 안, 그 꼭대기에 팽팽히 당겨진 외줄, 그 위를 줄을 탈 줄도 모르는 떠돌이가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물론 그는 이 위험을 예견하고 남모르게 허리에 안전띠를 맸다. 하지만 줄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안전띠는 풀리고, 자기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는 띠를 보는 순간 사색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원숭이들이 달려와 떠돌이의 코를 물어뜯고 눈을 가리며 바지를 마구 벗긴다. 더 이상의 극한은 없다.

그런데 영화의 관객은 바로 이 장면에서 배꼽을 잡고 웃어 제친다. 이런 처참한 상황이 폭소를 자아내게 하다니! 도대체 이런 웃음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에 의하면, 희극적 웃음은 개인의 비사회적 태도에 대한 사회적 경고이자 징벌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를 달리고 있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넘어진다. 이를 본 행인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사회는 그 자체로 원활함과 유연성을 갖고자 한다. 그래서 개인의 툭 불거진 행동은 곧 사회적 경고의 대상이 되며, 그 경고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웃는다는 것이다. 희극은 바로 이런 웃음의 사회성을 전용한 것이다. 채플린의 희극들 역시 이 점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웃음 유발 효과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커스>에서 채플린은 베르그송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밀고 나간다. 사회로부터 단순한 이탈을 넘어서, 긴박한 상황 속에서 완벽히 고립되고 소외된 자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공중에 매달린 외줄 위에서 홀로 이상한 모험을 하고 있는 떠돌이는 ‘완전 소외된 자’다.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따돌림 된 상태, 그것이 영화 관객들로 하여금 이 비인간적인(아니면 너무도 인간적인)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타인의 비극을 즐기는 인간 관계의 냉혹함, 그것이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유발하는 희극인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떠돌이는 외줄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곡마단에서 추방된다. 화난 아버지의 학대에 머나도 그곳을 떠난다. 그녀는 떠돌이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던가.
김용석/영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하지만 그는 머나와 렉스의 혼례를 주선하고 딸과 아버지의 화해 역시 유도한 뒤, 홀로 길을 떠난다. 사라져 가는 떠돌이의 뒷모습을 작은 원이 따라가면서 점점 작아지는 ‘페이드-아웃’으로 영화는 끝난다.

떠돌이는 이제 스스로 소외를 자청한 것이다. 그를 감싸는 원의 이미지가 상징하듯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세계는 다른 사람들이 웃음으로 조롱하는 세계이지만, 완전히 소외된 아웃사이더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기도 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에서도 유일하게 소외된 아웃사이더의 모습은 더 없는 애수를 자아낸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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