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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세차례의 장례직이 남긴 삶의 교훈

등록 2006-02-05 15:49수정 2006-02-06 15:06

글쓰기 교실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건 자연의 이치다. 고작 짧은 100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100년도 어렸을 때는 생각이 없고 늙었을 때는 힘이 없어 추스르고 추슬러도 50년 정도의 인생이다. 그동안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바다를 보러 부산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갔다. 항상 나와 형이 가면 닭볶음탕을 해주시는 할머니는 버스가 급출발을 하는 바람에 넘어져 허리를 다쳐 치료하던 중 우리 집에서 새벽에 돌아가셨다. 난 아침에 일어나 텅 빈 집을 보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햇빛은 어제와 똑같이 반짝거렸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신나게 까불며 다녔다. 내 생각과 내 느낌은 무시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든 안 돌아가시든 세상은 일분일초가 아까운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전혀 거리낌 없는 세상에 난 집에 돌아와 침울해 있었다. 입관 날 나는 학교에 빠지고 할머니 장례식에 갔다. 어머니, 아버지, 삼촌, 나, 형. 어머니가 혈족이 삼촌밖에 없기에 친구 분들이 가고 난 아침 8시, 장례식은 썰렁하였다. 난 그 썰렁함에서 나와 다른 장례 하는 곳을 기웃거렸다. 가족들은 모두 다 자기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음식을 먹느라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그 모습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유로움이랄까? 그 사람들에겐 그런 것이 보였다. 돌아와 난 멍하니 앉아 입관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 버스를 타고 화장하는 곳으로 관을 싣고 갔다.

관을 화장하는 곳으로 넣어놓고 난 멍하니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30분쯤 지나니 자그마한 통이 나오고 어머니와 할머니 친구 분들은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는 그 통을 가지고 화장터 뒤에 있는 산 위 항아리가 있는 곳으로 가 한 주먹씩 한 주먹씩 뿌리셨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아 우리 할머니가 정말로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 한쪽이 빈 듯,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그리고 한 달 후인가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또 며칠이 안 되어 나의 친지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세 번 치른 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린 과연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0년 안에 난 무엇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아직은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돈스럽고 외롭고 쓸쓸하다. 그렇다고 관 안에서 침전되기는 싫다. 솔직히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어차피 누구나 한번쯤은 겪기에 빨리 가나 늦게 가나 피차일반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그 50년 안에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 내 이름이 각인되길 원한다. 허황된 생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안 되더라도 내 자리 안에서 내 분야 안에서 최고가 되어 그 분야에 내 이름을 꼭 새기고 싶다. 아니 새길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 게 더 기쁘고 복되도다.” 이 속담을 난 이렇게 풀이해 본다. 잔칫집은 삶의 부분이지만 장례식은 삶의 전체를 볼 수 있고 그걸 본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배울 것이라고.

세 번의 장례식에서 내가 배운 것도 이와 같다고 확신하며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요한/전남대사대부고 2학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진지하게 드러내

청소년 시기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 글에도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죽음과 장례식을 경험하며 깨달은 삶에 대한 성찰이 매우 진지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장례식장의 풍경과 자신의 심리를 대조하는 방식을 통해 죽음의 비극과 일상적인 삶의 반복을 대비시키고 있어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박안수/광주국어교사모임 회장, 전남대사대부고 교사 ansu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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