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실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건 자연의 이치다. 고작 짧은 100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100년도 어렸을 때는 생각이 없고 늙었을 때는 힘이 없어 추스르고 추슬러도 50년 정도의 인생이다. 그동안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바다를 보러 부산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갔다. 항상 나와 형이 가면 닭볶음탕을 해주시는 할머니는 버스가 급출발을 하는 바람에 넘어져 허리를 다쳐 치료하던 중 우리 집에서 새벽에 돌아가셨다. 난 아침에 일어나 텅 빈 집을 보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햇빛은 어제와 똑같이 반짝거렸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신나게 까불며 다녔다. 내 생각과 내 느낌은 무시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든 안 돌아가시든 세상은 일분일초가 아까운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전혀 거리낌 없는 세상에 난 집에 돌아와 침울해 있었다. 입관 날 나는 학교에 빠지고 할머니 장례식에 갔다. 어머니, 아버지, 삼촌, 나, 형. 어머니가 혈족이 삼촌밖에 없기에 친구 분들이 가고 난 아침 8시, 장례식은 썰렁하였다. 난 그 썰렁함에서 나와 다른 장례 하는 곳을 기웃거렸다. 가족들은 모두 다 자기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음식을 먹느라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그 모습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유로움이랄까? 그 사람들에겐 그런 것이 보였다. 돌아와 난 멍하니 앉아 입관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 버스를 타고 화장하는 곳으로 관을 싣고 갔다.
관을 화장하는 곳으로 넣어놓고 난 멍하니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30분쯤 지나니 자그마한 통이 나오고 어머니와 할머니 친구 분들은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는 그 통을 가지고 화장터 뒤에 있는 산 위 항아리가 있는 곳으로 가 한 주먹씩 한 주먹씩 뿌리셨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아 우리 할머니가 정말로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 한쪽이 빈 듯,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그리고 한 달 후인가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또 며칠이 안 되어 나의 친지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세 번 치른 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린 과연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0년 안에 난 무엇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아직은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돈스럽고 외롭고 쓸쓸하다. 그렇다고 관 안에서 침전되기는 싫다. 솔직히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어차피 누구나 한번쯤은 겪기에 빨리 가나 늦게 가나 피차일반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그 50년 안에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 내 이름이 각인되길 원한다. 허황된 생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안 되더라도 내 자리 안에서 내 분야 안에서 최고가 되어 그 분야에 내 이름을 꼭 새기고 싶다. 아니 새길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 게 더 기쁘고 복되도다.” 이 속담을 난 이렇게 풀이해 본다. 잔칫집은 삶의 부분이지만 장례식은 삶의 전체를 볼 수 있고 그걸 본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배울 것이라고.
세 번의 장례식에서 내가 배운 것도 이와 같다고 확신하며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요한/전남대사대부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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