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김형수씨. 김형수 제공
폭력에 저항한 이들에게 세상은 폭력으로 대응했다. 헌법 39조(국방의 의무)와 19조(양심의 자유)의 경계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한국 사회가 취해온 태도였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그해 대법원이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리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처벌 규정의 예외인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이들에게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윤리·도덕·철학적 동기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향한 폭력적이고 부적절한 수사·재판 관행을 짚어본다.
전쟁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았다. 언론을 통해 접한 그곳의 모습은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대규모 공습으로 숨진 아이들과 희생자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피 흘리는 민간인들의 모습은 무기와 폭발물이 인간의 몸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전쟁이 인류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증언하고 있었다. 22일 동안 이뤄진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14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5300여명이 다쳤으며, 건물 4천여채가 내려앉아 20만여명이 갈 곳을 잃었다.
조성현(34)씨는 200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있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보며,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입대를 불과 열달 앞둔 때였다. ‘어쩌면 나도 군사훈련을 받고 전쟁에 동원되는 존재로 살아가겠구나.’ 잘못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자신 앞으로 다가온 병역을 거부하지 못했다.
2011년 9월 제대한 뒤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입대 전 어렴풋하게 품은 ‘반전’ ‘평화’에 대한 갈망이 군 복무 뒤 또렷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4년 그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내가 받게 될 처벌보다, 믿는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줄여 얻(게 되)는 자유가 더 갈급하다”고 당시 그는 에스엔에스(SNS)에 썼다.
2016년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마주하며 신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추상적으로 그려온 전쟁의 고통이 가슴속에 날카롭게 날아와 박힌 것이다. 이런 일들은 그를 행동하게 했다. 병무청은 예비군 훈련에 불참할 때마다 그를 향토예비군설치법(현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017년 4월 그를 조사한 경찰은 물었다. “병역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이행해야 하는데, 개인적 신념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조씨는 “신념에 따라 군사훈련이나 무기를 드는 행위를 하지 않는 대체복무를 하게 해달라는 것뿐”이라고 답했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넉달 뒤 예비군 기본훈련 2차 보충 소집에 불참해 또다시 고발된 그에게 경찰은 “북한에선 수시로 침략행위를 하는데, 예비군 훈련 등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가족은 누가 지킬 것인가” 등 신념을 부정하려는 의도의 질문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군복무 뒤 신념이 확고해져 예비군 훈련 거부에 나선 조성현(34)씨. 조성현 제공
재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원은 ‘신념’과 ‘양심’을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심에서 벌금 150만원과 200만원을 각각 선고받고 2심에서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지난 2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조씨가 제시한 자료 등을 통해 그의 주장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 따져보라는 취지다. 신념을 지키려고 2014년 병역을 거부한 뒤 이듬해부터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힘겨운 싸움을 벌인 그는 이제 4번째 재판을 받고 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시우(활동명·34)씨는 현역병 입대를 거부했다. 2017년 11월의 일이다.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병역거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성 소수자인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남성성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집단 문화에 거부감을 느껴왔다. 대학 입학 뒤엔 사회 참여적인 기독교 단체를 통해 용산참사 문제 해결 집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수요집회 등에 참여하며 비폭력·평화주의 양심을 형성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야 하는 상황을 전제한 군사훈련은 그의 삶과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항소심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현역 병역거부자 가운데 처음 무죄 선고를 받고 24일 대법원 선고를 앞둔 그는 병역거부 판결을 ‘정찰제’라고 표현했다. 1년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돼 현역 입대와 예비군이 면제된다. 이 때문에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일률적으로 선고해왔다. 2018년 2월 1심을 맡은 판사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뒤 “항소심 판단을 받아보라”며 재판을 마쳤다. 선고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처럼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비폭력·평화주의 등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전체 병역거부자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병무청이 집계한 병역거부자 현황을 보면, 2011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전체 병역거부자 4001명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3975명으로 99.4%를 차지했다. 나머지 26명(0.6%)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다. 예비군 훈련 거부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다소 늘겠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지금까지 법적·제도적으로 소외됐다.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해 11월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서 처벌규정의 예외사유로 정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종교활동과 관련한 기준만을 제시했을 뿐, 윤리·도덕·철학적 동기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구체적인 심사·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병무청은 2018년 헌재 결정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상대로 한 고발을 멈췄다. 지난해 6월에는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판단할 대체역 심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교도소,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급식, 청소, 시설관리 등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대체복무 기간은 36개월로 현재 현역 복무 기간(18개월)의 2배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어서면서,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는 복무 기간이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2018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앞서 기소됐다는 이유로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거나, 형이 확정돼 수감된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에 국한된 게 아니고, 2018년 이후 병역거부자의 양심만이 진실한 것이 아닌데도, 신념에 따른 수많은 병역거부자가 ‘진실한 양심’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다. 병무청 통계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는 이는 92명(여호와의 증인 신도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월 징역 1년6개월 형을 확정받고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중인 홍정훈(32)씨는 “병역거부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달 역시 징역 1년6개월 형을 확정받고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여주교도소로 이감된 오경택(33)씨도 “수형 생활로 몸이 고된 것보다 입대해 신념을 꺾고 지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대가는 예상보다 가혹했다. 병역거부로 지난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가거나 처벌을 받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그들을 괴롭힌 것이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지 심사한다’는 이유로 이뤄진 검찰의 모욕적·폭력적 신문이었다.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나 가정에 기반을 둔 물음들로 ‘어떤 불의에도 저항하지 않고 모른 체할 것인가’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오경택씨가 2019년 4월 법정에서 검찰 신문 때 받은 질문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집총 행위를 한 것은 양심에 부합하는가”라고 물었다. ‘폭력 행위에 반대한다’는 오씨 말에 검찰이 든 반론이다. 불의한 국가 권력에 대항한 시민들의 투쟁을 ‘폭력’으로 규정지은 검찰 물음에 오씨는 “현장에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말은 그의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그의) 양심이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고 전략적이어서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사와 재판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병역을 거부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뒤, ‘총을 들 것이다’라는 답을 끌어내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오씨도 이른바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판결의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침묵하지 않았다. “총을 든다고 한다면 (검찰이나 법원이) 내 양심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할 거고, 총을 들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 양심을 속이는 일이었어요.” 그는 법원에서 인정하는 양심이 ‘어떤 순간에도 총을 들지 않는 것’으로 매우 한정적이고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양심이란 게 살아온 과정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어서 그 형태와 논리가 다양할 수밖에 없잖아요. 1989년생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오늘을 사는 나의 양심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2016년부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같은 해부터 반복적으로 기소된 김형수(33)씨는 지난달 31일 검찰 신문 다음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검찰에 계류된 5건의 병역거부 사건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리됐다는 내용이었다. 헌법불합치 결정 전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재판을 받고 있고, 그렇지 않은 누군가는 무죄 취지로 불기소 처분을 받는 상황이다. “과도기라고 하더라도 양심을 침해하는 인권 침해적 재판이 이뤄지고 있어요. 내부 방침만 정하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도 법원과 검찰이 병역거부자를 괴롭히는 거예요. 사실상의 처벌이죠.”
전문가들은 대체역 심사위가 도입된 만큼 법원이 아니라 심사위가 현재 재판을 받는 이들의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에게는 사면과 복권, 전과기록 말소 등의 조처를 비롯해 특별재심 기회까지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체역 심사위원을 맡은 백승덕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신념을 법원에서 다루는 관행이 지속된다면,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는 물론, 대체역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조윤영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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