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의 한 외국인 교수가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담긴 문학작품을 강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성적 불쾌감을 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내용이 총학생회의 성명서로 공론화되자 학교는 해당 교수에 대해 재임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외대 서양어대학 ㄱ교수는 지난해 2학기 회화·작문 수업에서 성폭행에 관한 내용을 담은 교재로 수업하며 학생들에게 읽게 시켰다. 그러면서 교재 내용 중 여성 인물이 생리를 경험하는 장면을 두고 몇몇 여학생들에게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게 가능한가’라고 질문하며 ‘온 사방이 피로 물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과장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ㄱ교수가 이전에도 소아성애, 성폭력, 성매매 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선정해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읽고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지난 23일 성명서를 내고 “설령 그것이 문학 내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고 하더라도 성적인 묘사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다루며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교수법”이라며 ”성희롱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은 성적 불쾌감을 느낀 피해자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ㄱ교수는 2017년부터 학과 조교들에게 핸드폰 개통을 위한 동행이나 어린이집 예약, 출입국관리소 동행, 은행업무 등의 개인적인 일을 상습적으로 부탁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교들의 시정 요구로 학과에서 사적인 부탁과 개인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연락을 자제해달라고 지침을 내리자 수강생을 상대로 사적 지시를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교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취미생활인 사진 촬영도 계속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총학생회는 “이러한 행위들은 교수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에서 이뤄져 학생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수업 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응한 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난 2월과 3월 학내 성평등센터에 ㄱ교수를 신고했으며 센터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ㄱ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성희롱 의혹에 대해 “문학작품을 토론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은 센터의 조사가 지지부진했고 신고 후 교수가 강의 중에 신고자를 색출하는 등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총학생회의 공론화로 사건이 알려지자 지난 24일 열린 이사회 인사소위에서 ㄱ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결정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조사가 많이 지연된 것은 사실이라 성평등센터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이지만 해당 교수의 계약을 해지하고 재임용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신속히 내렸다”며 “연구실적 미달과 이번 사건이 재임용 탈락의 사유”라고 설명했다. ㄱ교수의 임용과 관련한 이사회의 최종 결정은 오는 28일 이뤄질 예정이다. 이주원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피해자들과 논의해 학교 측의 대응에 대한 입장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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