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큰오빠 정형곤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화상으로 만난 작은오빠 정형식씨(화면 속 왼쪽)와 화상으로 만나며 웃음짓고 있다. <경찰청> 제공
“오빠가 허리끈으로 나를 묶어뒀으면 이렇게 오래 힘들지 않았을 텐데…” (웃음)
5일 오전 11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66·경기 군포 거주)씨가 62년 전 잃어버린 작은 오빠 정형식(68·캐나다 거주)씨를 화상으로 만나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주름이 깊게 팬 눈가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명숙씨가 4살때 보육원을 거쳐 입양되면서 남매의 ‘성씨’가 달라졌다.
진씨가 “잘 있었어요. 오빠?”하고 인사를 건네자 형식씨는 “덕분에 명숙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다시 볼 줄 몰랐는데 정말 고맙다”고 답했다. 진씨는 “머리가 왜 이렇게 다 빠졌어?”라며 놀리기도 하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해요. 오빠”라고 말했지만 잃어버린 동생을 62년 만에 마주한 형식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형식씨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가다 오빠를 놓치고 가족을 잃어버린 진씨는 이날 큰 오빠인 정형곤(76·인천 남구 거주)씨를 실종가족지원센터에서 상봉했고, 캐나다에 사는 작은 오빠와는 화상 전화로 만났다.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긴장한 표정으로 동생을 기다리던 형곤씨는 진씨가 센터로 들어오자 “찾아줘서 고맙다. 얼굴이 그대로네”라며 두손을 꼭 맞잡았다.
4살때 가족을 잃은 진씨는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보육원을 거쳐 충남의 한 수녀에게 입양됐다. 진씨는 “어렸을 때 ‘명숙’이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성은 몰랐다. 영세를 주신 신부님이 ‘진씨’라 그분의 성을 따랐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이 된 뒤에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하다가 2019년 11월께 경찰에 유전자 등록을 했다.
2004년부터 장기실종자 발견을 위해 ‘유전자 분석제도’를 활용 중인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는 지난 3월부터 진 씨가 가족과 헤어진 경위 등을 분석해 가족일 가능성이 높은 대상자군을 추렸다. 이어 유전자 비교 분석을 하던 중 가족일 가능성이 큰 형식씨를 찾았다. 앞서 형식씨도 동생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하고 유전자를 등록해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찰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형식씨의 유전자를 밴쿠버 총영사관을 통해 다시 확보한 뒤 최종적으로 남매임을 확인했다.
진씨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유전자를 등록한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을 만났다. 도와준 경찰에 감사하고, 남은 시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유전자 분석제도는 실종자 가족들의 희망이다. 앞으로도 경찰은 관계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왼쪽)와 큰오빠 정형곤씨(오른쪽)를 62년만에 만나 끌어안고 있다. <경찰청> 제공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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