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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00일간의 사법농단 재판…아직도 멀지만 가야 할 길

등록 2021-07-10 20:19수정 2021-07-12 12:08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31) 시즌1을 마치며
2019년 3월11일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관계자들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중당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사법농단 가담 법관 탄핵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3월11일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관계자들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중당 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사법농단 가담 법관 탄핵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기사 읽고 보냅니다’라는 짧은 제목의 이메일에는 불만 섞인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도대체 사법농단 재판은 왜 이렇게 길고, 복잡하고, 뭐가 많나.’ 본인의 재판이 별 심리 없이 짧게 끝났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독자로 추측됐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남았습니다. 2018년 11월부터 2년8개월간 사법농단 재판을 쫓아가며 그 진행 상황을 공유해왔는데 낱개의 기사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기사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독자에게 ‘사법농단 재판이 뭐길래’에 대한 답을 편지 형식으로 보냅니다.

판사 뒷조사 문건에서 시작된 사건
2018년 기소 뒤 2년8개월여 지나
일선근무 8명 1·2심 줄줄이 무죄

전국에는 약 3천여명의 판사가 있습니다. 이 판사들로 구성된 사법부를 운영하려면 시설 관리부터 재판 제도, 법관 인사까지 여러 사법 행정 업무가 필요하겠지요. 이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입니다. 재판 업무가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사법농단의 원천이 돼버렸습니다. 사법행정 업무로 차출된 판사들이 사법 행정을 위한 권한(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일선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 바로 사법농단의 핵심이거든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게 된 이탄희 당시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가 판사들의 사법개혁적 학술 대회를 저지하라는 업무 지시를 거부하면서 ‘판사 뒷조사 문건’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26회·이하 괄호 속 숫자는 이전 연재 회차) 파장은 컸습니다. 세차례의 법원 내부 진상조사(2017년 4월, 2018년 1월·5월)를 거쳐 법원 내부 문건이 공개됐고 고구마줄기처럼 의혹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2018년 11월~2019년 3월 전·현직 판사 14명이 차례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00일이 가까워옵니다.(1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 14명 혐의 가릴 세개의 주춧돌

사법농단 사건은 크게 세개의 주춧돌 위에 서 있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①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나 국회의 민원을 들어줬다. ②경쟁 관계인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고 재판에 관여했다. ③국제인권법연구회를 비롯해 법원 안팎의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한편, 판사 비위 사건은 교묘히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세가지 주춧돌에서 갈라져 나오는 구체적인 의혹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판 거래, 판사 인사 불이익, 정운호게이트 파문 확대 저지 등 40여개로 뻗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재판 개입과 법관의 독립 침해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습니다.

독립성 침해 위협은 법원 담장 밖 정치·경제 권력자가 아닌, 담장 안 사법행정권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의혹 대다수에 발을 걸친 주연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조한 정책 기조와 방향을 좇아, 그를 필두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위)부터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아래)까지 법원행정처 수뇌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검찰 공소장에서 이들은 지시와 실행, 보고와 승인의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평판사급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법원행정처의 마수는 일선 법원까지 뻗어 나갔는데요. 그 요청에 응했다고 의심받는 일선 법원의 판사들이 나머지 등장인물 8명입니다. 청와대 관심 재판에 직접 개입하고(임성근), 재판부가 직접 그 심증을 외부로 유출하거나(방창현), 재판 배당까지 손댔다(심상철)는 의혹입니다. 법원 비위 사건이 발생하자 영장 재판에 올라온 검찰 수사 기록을 법원행정처로 전달했다(신광렬·조의연·성창호, 이태종)는 의혹도 있습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며 얻은 내부 자료를 무단 반출한 사건(유해용)도 있습니다.(9·11·17·18·23회 등)

피고인 14명은 혐의나 지위에 따라 7개 그룹으로 쪼개져 따로 또 같이 재판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줄줄이 무죄’ 제목을 단 기사들 많이 보셨을 겁니다. 대법원 최종 결론까지 나온 사건은 아직 없지만, 앞서 말씀드린 나머지 8명의 등장인물은 하급심(1·2심)에서 차례로 무죄를 선고(표1)받고 있습니다.

임성근 전 판사의 1심 판결을 볼까요. 재판부는 재판 관여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이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이 인정되려면 ①직무권한이 있어야 하고 ②그 권한이 남용돼 ③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 과정과 결론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을 리 없습니다. 없는 권한을 남용할 수도 없으니 더 물어볼 것도 없이 혐의가 성립할 수 없는 겁니다. 재판 독립이 오히려 재판 독립 침해 처벌을 가로막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엇갈린 판결도 나왔습니다.(28회) 지난 3월23일 법원행정처 수뇌부인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첫번째 유죄 판결을 받은 건데요. 담당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명백한 잘못을 ‘지적’할 권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태하거나 미숙한 판사가 있을 수 있고, 만약 그런 판사가 장기미제 사건을 쌓아두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한다면 사법행정권자가 이를 지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재판 과정에 끼어들거나 그 결론을 정해주는 ‘권고’ 이상의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해 결정을 번복하게 하거나 선고기일을 미루게 만든 2건(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 번복,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행정소송) 등을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처벌 기준 없어
‘재판 관여’ 행위는 인정하지만
형사 처벌은 할 수 없다는 판단도

이 논리가 8월12일 임성근 전 판사의 항소심에서 재연될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세월호 7시간 의혹 명예훼손 사건 등 주요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습니다. 임 전 판사 변호인은 ‘법관의 세계’에 관해 이해가 부족하다며 이렇게 맞섰습니다.

“이 (유죄 판결의) 논리야말로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것입니다. 막말 재판이나 예외적으로 상당히 지연되는 재판이 일반적인 것입니까?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보도도 되고 비난을 받는 거죠. 대부분의 법관님들이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재판은 법과 절차에 따라서 공정하게 이뤄집니다. (이 유죄 판결은) 특이 사항을 예로 들며 국민 신뢰를 오히려 저해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6월21일 항소심 결심공판)

재판을 재판, 판사를 판단하는 과정

피고인들은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행사에 불과할 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행위가 범죄 성립 요건에 들어맞는지 엄격히 따져보고 유죄 아니면 무죄의 결론을 내리지요. 사법행정권의 남용을 처벌해본 적도, 사법행정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본격 연구한 논문도 국내에 없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형사재판이라는 가장 무디지만 날카로운 칼로 헤쳐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런 재판을 보다보면 유무죄 양극단 사이로 펼쳐지는 수많은 ‘법원의 민낯’에 주목하게 됩니다.

재판 당사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건 판사의 마음(심증)일 것입니다. 선고 전까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 마음에 가닿고자 전관변호사(검찰이나 법원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변호사)라도 선임하는 것이겠죠. 법원행정처는 근무연, 학연, 지연을 활용해 재판부와 접촉해 심증을 알아내고 특정 판단 방향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행정소송이 그러했습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재판장 방창현 부장판사와 접촉하기 위해 그의 대학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심경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을 활용했습니다. 심경 판사는 “법리적인 부분 참조하라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공식의견이라고 하면 부담을 느낄” 걸 알면서도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19회)

이런 사건도 있었지요.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한 토론회에서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자 임종헌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기자인 것처럼 박 소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기사를 대필해 쓰게 하고, 이를 2016년 3월 <법률신문>에 싣게 했습니다. 심의관도 판사입니다. 2년 정도 법원행정처로 파견 와서 사법행정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행정부), 국회의원(입법부)과 다르게 판사는 선출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판단하라는 의미에서 법관의 신분을 헌법으로 강력히 보장합니다. 그럼에도 기사 대필이라는 황당한 업무를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상급자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후회된다”고 했습니다.(21회)

이런 개별 사건과 증언, 인물들을 훑다보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대체 재판은 무엇이고, 판사는 누구인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12·15회) 사법행정권의 적정한 경계선을 그어가는 것, 그리하여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법관의 독립’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남은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는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받을 시민의 권리를 바로 세우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본인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본인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제 끝날까’ 답할 수 없는 안타까움

“이 사건이 위헌·위법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재판상 독립의 원칙을 밝혀서 이후에 혹시라도 재판 관여가 다시 발생하게 되면 법관들이 이를 거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7월6일 법관 탄핵 심판 두번째 변론기일)

그 답을 찾아나가는 현장은 형사재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임성근 전 판사에 대한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탄핵 심판은 예상보다 이른 결론이 나올 것 같습니다. 법관 탄핵 심판을 청구한 국회 쪽 대리인단이 관련자 6명을 증인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8월10일 서류 증거 조사를 마치고 심리 종결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헌재의 최종 결정만이 남습니다.(27·30회)

‘법관 독립’ 진짜 의미 담는 과제
재판 언제 끝나는지 묻는 독자 편지
아직은 빈칸으로 답 남겨둘 수밖에

법원 안팎에서도 후속 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인사 불이익 피해자 송승용 부장판사가 2020년 1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인사 실무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16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또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때문에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지연됐다’며 2021년 5월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4·8회)

뻗어 나가는 후속 재판과 달리, 의혹의 본류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2년5개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2년8개월)은 1심도 아직 못 끝냈습니다. 2020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년 넘게 합의부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불구속 피고인은 2.1%(268명)에 불과합니다.(3·29회 등) 임 전 차장은 재판부 재판장이 인사 이동 없이 6년 내리 근무하며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건 김명수 대법원장의 ‘코드인사’에 따른 것이라며 재판부의 공정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언제 끝나나.’ 독자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빈칸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은 계속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sol@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법정 르포 형식으로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31회로 첫 시즌을 마무리하며, 두번째 시즌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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