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일선 재판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가 다른 사법농단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를 비판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다른 재판부를 비판하는 일이 이례적인 탓이다.
지난 12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게 “일반적인 직무권한 범위를 넘는 월권행위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재판에 간섭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남용된 직권도 없다는 것으로, 사법농단 사건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줄줄이 무죄를 받았던 논리 그대로였다.
임 전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법농단 재판 중 유일하게 유죄판결을 한 1심 판결문을 비판하고 나섰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지난 3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은 (법관의) 현저한 (재판)지연이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 업무의 핵심영역을 지적할 직무상의 권한(지적 권한)이 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임 전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당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지적 사무’(잘못을 지적할 권한)는 특정 사건에서 판사에게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 103조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어 “(지적 사무를 인정해)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면, 재판 진행이 부당하게 방해받을 수 있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논리는 형식상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재판의 독립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판에 개입한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모순된 결론을 낳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법농단 재판을 계기로 오래 전부터 지적된 직권남용죄의 모호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오는 19일 사법농단 관련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법원장의 항소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 전 법원장은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의 비리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후배 판사를 시켜 구속영장 등 수사기밀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전 법원장 역시 후배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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