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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늘부터 갓생”…Z세대가 코로나 블루를 견디는 법

등록 2021-08-22 15:15수정 2021-08-23 02:14

빽빽한 생활습관 가득찬 ‘갓생 살기’에 빠진 청춘
‘물 다섯잔 마시기’와 같은 소소한 것에서 성취감
매일 해야 할 습관을 성취하면 스티커로 표시하는 이가영(24)씨의 ‘해빗 트래커’. 이씨 제공
매일 해야 할 습관을 성취하면 스티커로 표시하는 이가영(24)씨의 ‘해빗 트래커’. 이씨 제공
“오늘부터 ‘갓생’ 살기 시작합니다!” 대학원생 ㄱ(26)씨는 이달 초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아침 8시부터 최소 30분 단위로 빽빽하게 짠 일정표도 함께 올렸다. 아침 8시에 일어나 홈트레이닝을 하고 샤워를 마친 다음, 엑셀 공부를 한 뒤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디자인 프로그램과 관련한 유튜브 강의를 듣고, 인·적성 문제를 푼다. 밤 11시, 15분 동안 성경 필사까지 마쳐야 하루가 마무리된다. ㄱ씨는 계획한 일정을 마칠 때마다 ‘인증’을 위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사진으로 찍는다. 계획한 일을 못 할 때도 있지만 그는 ‘내일은 더 갓생을 살자’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든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제트(Z)세대 사이에선 ‘갓생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갓생’은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접두사처럼 붙이는 ‘갓(신·God)’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다. ‘훌륭하고 모범이 되는 인생’이라는 뜻으로 흔히 사용된다. 소소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갓생의 핵심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외부활동과 대인관계를 통해 성취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런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10~20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장다경(22)씨가 매일 할 일을 적어둔 기록장. 장씨 제공
장다경(22)씨가 매일 할 일을 적어둔 기록장. 장씨 제공
22일 네이버의 검색량 분석 시스템인 ‘데이터랩’을 통해 최근 3년 동안의 ‘갓생’ 월별 검색량을 살펴보니, 지난해 2월 이후 1년6개월만에 검색량이 100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랩은 조회 기간 동안 특정 열쇳말의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설정해 상대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해 2월 검색량 1을 기록한 갓생은 지난 1월 63으로 급증한 뒤 지난달 100을 기록했다.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저마다의 갓생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갓생러’(갓생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어 ‘er’를 붙인 신조어)들은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명예가 따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일상적인 생활습관을 실천한 뒤, 스스로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끼는 삶이 갓생이다. 이들의 일과는 거창하지 않다.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하기’, ‘하루에 물 다섯잔 마시기’, ‘밥 먹고 바로 눕지 않기’ 등 기성세대가 “이런 것도 목표냐”고 의아해할 만한 실천이 갓생의 기본 요소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 즉 ‘소확성’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엠제트(MZ) 세대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월 펴낸 ‘엠제트 세대의 여가 생활과 자기개발 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70.3%가 ‘사소한 성취도 내 삶에 큰 의미가 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개발이 꼭 대단한 목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응답도 65.8%였다. ‘아침 7시에 일어나기’와 ‘삼시 세끼 챙겨 먹기’를 실천 중이라는 수험생 이가영(24)씨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기간에 눈에 보일만 한 성과가 없다 보니 쉽게 지치고 자신감이 내려갔다. 매일 작게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갓생 살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갓생러들은 공부나 일, 운동과 같이 자기개발을 위한 생산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지친 마음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예쁜 접시에 디저트 담아서 먹기’,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3줄 일기 쓰기’와 같은 항목이 갓생의 구성 요소에 빠지지 않는 이유다.

목표를 달성하면 보증금으로 낸 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왼쪽)와 하루의 할일을 설정하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앱 ‘투두 메이트’. 구글 플레이스토어 갈무리
목표를 달성하면 보증금으로 낸 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왼쪽)와 하루의 할일을 설정하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앱 ‘투두 메이트’. 구글 플레이스토어 갈무리
이들은 홀로 갓생을 살고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 서로 갓생을 감시하거나 독려하기도 한다. 이들은 계획한 것을 마칠 때마다 종이에 스티커를 붙이는 ‘해빗 트래커(습관 추적기)’ 양식을 이용해 기록하거나, 자기관리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일과를 기록하고 공유한다. 목표를 달성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 하루의 할 일을 설정하고 친구들과 공유한 다음 서로 응원을 남길 수 있는 앱 ‘투두 메이트’ 등이 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 열풍이 분 지 3∼4년 만에 자기관리와 통제가 유행이 된 데에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환경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부터 갓생 살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소아무개(23)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쌓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학교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하루 할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며 “코로나 이후에는 행동반경이 줄어들어 무기력감이 자주 밀려들었다. 코로나가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이렇게 자신을 통제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갓생 살기에 도전하고 있는 장다경(22)씨는 “갓생이 유행하는 데에는 비혼이나 1인 가구가 늘어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느껴졌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인식이 많아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기존 자기개발은 취업이나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향상하기 위한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갓생은 자신의 삶에 더 초점을 둔 생활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목표가 소소하다 보니 실패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갓생 살기에 몰두하게 되는 이유다. ㄱ씨는 “갓생은 마라톤 같다. 가끔 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다음 날 일어나서 더 좋은 체력으로 해내면, 성취감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비싼 차와 명품을 가진 사람들이 갓생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시간 개념이 무색해진 요즘에는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또래들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얻고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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