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남현동 먹자골목에 있는 한 삼겹살집에 붙은 임시 휴업 문구.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올해까지만 장사하고 접으려고 한다. 한 달에 까먹는 돈만 1천만원인데 지원금은 한 달 치도 안된다. 이제는 한계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ㄱ씨)
“작년부터 이어져 온 거리두기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불가피한 결정이겠지만 어느 정도 영업 제한을 푸는 식으로 ‘위드 코로나(코로나19와의 공존)’가 가능하다고 본다.” (대학생 정아무개씨)
지난 20일 정부가 현행 거리두기 조처(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일부 지역 3단계)를 2주 연장하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방역 피로감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가 22일과 주말 사이 만난 자영업자들는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라는 절규를, 대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토로를 쏟아냈다.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력 저하를 우려하며, 거리두기 4단계에서도 학교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노동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부 사무직 노동자 외에는 정상 업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백신 2차 접종 완료자 2명을 비롯해 4명까지 저녁 시간 식당·카페를 이용할 수 있게 했지만, 자영업자들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영업 제한시간을 밤 10시에서 9시로 한시간 당겼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김아무개(31)씨는 “평일에는 퇴근시간 뒤인 오후 7∼8시께에 손님들이 오는데 밤 9시 제한이 있으니 저녁 장사가 잘 안될 것 같다”며 “4단계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생 2명에게 무급휴가도 줬는데,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6시 이후에는 백신 접종자를 포함해 사적모임을 4명까지 확대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며 “지금도 큐아르(QR)코드 체크에 마스크 착용 등 당부할 것이 많은데 언제 다 백신 접종을 확인하고 있겠는가. 자영업자만 피곤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오뎅바를 하는 조아무개(66)씨는 “우리 식당은 1차로 식사를 한 손님들이 2차로 오는 장소인데, 사적모임을 백신접종자 포함해 4명까지 늘렸더라도 밤 9시로 영업제한 시간을 앞당겨 더 힘들어 질 것 같다”며 “재난지원금 안 줘도 된다. 자정까지 사적모임 4명까지 허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25일 낮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식당에 휴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정부가 최근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5차 재난지원금인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을 40만∼2천만원씩 지급하기 시작했지만, 매출 손액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서 2층짜리 고깃집을 운영하는 백아무개(52)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단체예약을 받는 2층을 써 본 적이 없다”며 “500만원인 월세만 2년째 겨우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지원금이 400만원이 나온다고 하지만 (한 달) 임대료도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2년 가까이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아쉽다’고 토로했다. 특히 2∼3년제 전문대를 다니는 학생들은 대면 수업 없이 학교를 졸업하게 된 상황에 답답함과 아쉬움을 전했다.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다은(20)씨는 “호텔조리과는 보통 한 학기에 넉 달은 실습을 하는 학과인데 지난해에는 두 달, 올해에는 석 달 반 나간 게 전부다. 졸업반인데 한 게 없어서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든 것도 문제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아무개(23)씨는 “영업제한 시간이 당겨진 것을 보면서 다른 아르바이트 구해야 하나, 그런 걱정이 제일 먼저 들었다”며 “거리두기 연장에도 주변에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고 규제가 엄격하게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려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코로나19 확산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학습 공백을 막기 위해 전면등교 등을 통한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장아무개(37)씨는 “어른들도 40분 이상 화상회의를 하면 집중을 하기 힘든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화상 수업에 집중하기는 더욱 어렵다”며 “아이들이 오랜 기간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학력 저하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김현숙(45)씨도 “두 아이가 지금 등교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되니 좋다”며 “학교는 방역이 잘 되는 편이니 불안하더라도 전면등교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오는 9월6일부터 거리두기 3단계 지역을 대상으로 전면등교를 시행하기로 했다. 4단계 지역에서는 학교급별로 학생 수 3분의 2 안팎이 등교하게 된다.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현동 먹자골목 거리. 사당역 인근인 이곳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텅빈 거리가 됐다. 장예지 기자
현행 거리두기 연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갈렸다. 사무직·대기업 노동자들은 회식 등 직장 행사가 줄어 안심된다는 의견을 냈으나, 제조업 노동자 등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건설회사 사무직 김아무개(35)씨는 “거리두기 4단계 기간에는 술자리 등 팀 행사가 전혀 없어 매일 ‘칼퇴근’을 할 수 있었고, 사적모임을 통한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크지 않았다. 거리두기 연장에 환영하는 직원이 많다”고 귀띔했다. 반면 제조업체 생산직 김한수(30)씨는 “사무직 직원들은 거리두기 4단계에는 절반씩 재택근무를 한다는데, 현장 업무가 불가피한 생산직에는 그림의 떡”이라며 “아침마다 공장으로 우르르 모여 출근해서 점심에는 구내식당에 모여 식사하는데 거리두기 연장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거리두기가 연장되면서 택배·배달 노동자 등 필수노동자들 사이에선 업무가 과중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택배노동자 김도균(49)씨는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택배 물량 자체가 크게 늘었고, 특히 배달 업계에서 일회용 그릇 등 부피가 큰 물품을 시키는 일이 많아져 이를 배달하는 일이 고역”이라며 “크기에 비례하는 비용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은 탓에 부피가 큰 물건을 배달해도 손해보는 구조다. (거리두기로) 집회도 하지 못하는 등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사건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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