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를 용도변경해 불법으로 유가보조금을 타온 화물차주의 차를 산 사람은 화물차를 넘겨받기 전 지급된 유가보조금을 갚을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자동차 소유권이 바뀐 뒤 유가보조금이 부당하게 지급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지방정부가 차를 넘겨받은 이에게 이전 차주가 불법으로 받은 유가보조금을 환수해왔다.
대법원 1·3부는 불법으로 용도 변경한 화물차를 넘겨받은 화물차 운송사업자 ㄱ사와 ㄴ사가 서울시를 상대로 낸 화물차 유가보조금 반환 및 지급 거절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이들 사업자에게 화물차 승계 전후 발생한 유가보조금 부정 수급액 전부를 반환하라는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ㄱ·ㄴ사에 차를 판 이들은 2010∼2011년 청소용·자동차수송용·살수용 등 특수화물차로 등록된 화물차들을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일반 화물차들로 불법 용도 변경했다. 이후 ㄱ·ㄴ사는 2014년∼2015년 이 화물차들을 넘겨받았고, 2017년까지 유가보조금을 타왔다. 이에 서울시는 이들 사업자에 화물차를 넘겨받기 전후에 발생한 유가보조금 부정 수급액 전부를 반환하라고 명령했고, 이들 사업자는 반환 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유가보조금은 유가 인상에 따른 운수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운수사업자에게 유류 사용량에 따라 지급하는 것으로, 지급 대상은 화물차 운송사업을 위해 적법하게 허가를 받아 등록된 차량이다.
ㄱ사의 사건을 맡은 1·2심은 불법 용도 변경된 화물차의 유가보조금을 청구하고 수령한 것은 유가보조금 반환명령의 대상에 해당한다며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ㄱ사가 화물차를 넘겨받기 전 판매자가 지급 받은 유가보조금도 반환해야 한다는 서울시 처분이 적법하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ㄴ사의 사건을 맡은 1·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ㄴ사에게 화물차를 넘겨받기 전 판매자가 지급받은 유가보조금까지 반환하라고 명령한 서울시의 환수처분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반면 2심은 “ㄴ사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유가보조금을 받은 지위’까지 승계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서울시의 환수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ㄱ사와 ㄴ사가 화물차 넘겨받은 뒤 지급받은 유가보조금 부정 수급액에 대해선 반환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유가보조금 반환명령의 대상과 운송사업자 지위 승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적법한 반환명령의 범위에 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판매자가 화물차를 넘기기에 앞서 불법적으로 챙긴 유가보조금은 판매자에게서 환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화물차를 넘기기 전까지 지급된 유가보조금의 반환책임은 판매자에게 있다고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례다.
서울시 쪽은 대법원 판결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를 대리한 송기호 변호사는 “화물차를 넘긴 판매자가 경제적인 능력이나 재산이 없는 경우, 유가보조금 환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전 소유주가 유가보조금을 불법으로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게서 화물차를 산 이들에게 화물차를 넘겨받은 뒤의 유가보조금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운다면, 공공예산이 들어간 다른 공적 사업 전반에서도 환수를 둘러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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