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운영하지 않는 주유소에 명의를 도용당해 사업자로 등록된 뒤 1억여원의 세금을 낼 뻔한 40대 지적장애인에게 법원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과세관청이 처분 당시 간단한 사실확인만 했어도 실제 경영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3급 지적장애인 ㄱ(40)씨가 “납세의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달라”며 국가와 경기도 여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납세의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지적장애로 사회 연령이 8세에 불과한 ㄱ씨는 자신의 이름 말고는 한글을 읽거나 쓸 수 없어 누나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던 중 지난 2014년 실종돼 수년 뒤에 발견됐다. 당시 경기도 여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ㄴ씨는 사업자금이 부족해지자 대출 브로커를 통해 ㄱ씨를 알게 됐고, 그가 실종된 사이 같은 해 3월 그의 명의로 주유소 사업자등록을 하고 같은 해 12월 폐업할 때까지 부가가치세 약 1억2천700만원과 종합·지방소득세 등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ㄴ씨는 그의 명의로 신용카드도 발급받아 약 1천600만원을 결제하고, 대부업체에도 약 2천500여만원을 대출받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ㄱ씨 쪽은 ㄴ씨를 준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납세의무 부존재 확인 소송도 냈다.
이에 재판부는 ㄱ씨에게 부과된 세금은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ㄱ씨는 단순한 명의 대여자에 불과하고, 실제 주유소 경영자는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며 “지적장애 정도에 비춰볼 때 사업자등록의 법률·경제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주유소 사업자 명의를 대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 운영에도 관여한 바가 없고, 과세관청도 처분 당시 간단한 사실확인만 했더라도 ㄱ씨가 실제 경영자가 아님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한편 ㄴ씨는 준사기 혐의로 2018년 8월 징역 1년을 확정 판결받고 복역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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