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사전에서 ‘기쁨’을 찾으면 ‘joy’(조이), ‘delight’(딜라이트), ‘glee’(글리) 같은 단어들이 나온다. 영한사전에서 ‘joy’를 찾으면 기쁨, 즐거움, 환희, 기쁜 표정, 만족의 원인, 성공, 성과, 행운, 환희의 축제가 나온다. ‘기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의 모양과 테두리가 ‘조이’라는 단어가 가진 그것들과 달라서 한가지 말에서 다른 말로 옮기면 뜻이 조금씩 달라지고, 어떤 경우엔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늘, 말과 말 사이를 옮기는 일이 어렵다.
내가 매해 준비하는 행사가 있는데, 늘 주제어를 뽑고 그에 맞춰 행사를 준비한다. 우리말에서 시작해서 영어를 달기도 하고, 영어로 뜻을 먼저 떠올리고 적당한 우리말을 찾기도 한다. 올해의 주제어는 ‘긋닛’이었다.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이 단어가 떠오른 것은 진화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때문이었다. 그는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그 번성과 소멸의 과정을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란 말로 표현했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끊어졌다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펑크추에이션’(punctuation)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것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다가 ‘긋닛’에 이르렀다. ‘펑크추에이션’은 구두점이라는 뜻도 있으니 우리가 코로나19 때문에 멈춘 지점의 의미가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물음표인지 물을 수도 있다. 우리말과 영어를 이어 써서 의도적으로 다른 의미의 폭이나 모양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만들어본다.
원래, 영어를 음차해서 그냥 책 제목으로 쓰거나 우리말 문장 안에 넣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피릿 오브 원더>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말 앞에서 느끼는 떨림을, 이 말에서 밀려오는 울림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잃는 것들을 두려워했을 것 같다. 음만 빌려 쓴 제목을 처음 용서한다. 이 책은 큰 제목만 근사한 것이 아니다. 담긴 이야기의 제목들도 모두 멋지다. “이 얼마나 광활하고 근사한 우주인가”라고 탄성을 지르더니, “보름달 밤에 달에 간다”고 하네. 한술 더 떠서 “별에 가고 싶냐”고 묻더니 “작은 공상가”는 시간을 오간다.
만화책 속의 우주는 여전히 가슴 떨리는 모험의 대상이고, 달과 별도 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심하게 흘러가는 배경은 심상치 않다. 들판과 도시들 중에 일부는 물 아래로 가라앉아, 그 속에 추억도 함께 잠긴 세상. 그래서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던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야 이해가 될 논문을 보물지도에 표시해 손녀에게 남긴다. 기후변화를 해결할 실마리를 담아서. 물론, 서로 다른 이야기에 담긴 할아버지들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물질 이동 기구로 달에 가겠다던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찾고 보니 겨우 지구 반대편에 가서 유유자적 지내고 있다. 에테르 기류이론으로 화성에 가겠다던, 소년과학클럽의 할아버지들도 우주에서는 날 수 있지만 지구에서 날 수 없는 진동차 덕분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우주는 경이롭지만 인간은 겨우 살고 있고, 간신히 살고 있는 존재의 끊임없는 실패들이 인연을 만든다. 책 안의 또 하나의 멋진 제목처럼 “바닷바람이여,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세.”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