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자료를 인용해 2020년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액이 3억400만 달러(약 3582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으로 친분을 쌓은 뒤 자신의 거짓 재력·외모 등을 뽐내 상대의 신뢰를 얻고, 교제나 결혼을 빌미로 피해자들에게 금전을 요구해 챙기는 사기 범죄다. 미국의 경우 전체 피해액의 절반에 가까운 1억3900만 달러(약 1637억원)가 60살 이상 고령자층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범죄자들이 실제 만남을 피할 ‘명분’이 생겨 로맨스 스캠 범죄가 더 확산됐다고 짚었다.
로맨스 스캠은 미국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 수법과 다양한 피해사례가 알려졌지만 피해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계는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한국으로 재산을 보내는 데 통관비 등이 필요하다며 24명의 피해자들에게 돈을 챙긴 혐의로 국제사기조직 14명을 검거해 이 중 10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국내에 거주 중인 피의자들은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뒤 해외파병 군인 외교관·의사 등을 사칭해 24명의 피해자에게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송금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총피해금액은 16억7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대부분은 중·장년층으로 일부 피해자는 먼저 송금한 돈을 되돌려 받으려고 어쩔 수 없이 돈을 추가로 입금한 사례도 있었다.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들은 대부분 국내 거주 외국인들로 해외 총책의 지시를 받아 국내에서 외국인 명의 대포통장 인출책, 관리책 등 역할을 분담해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이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을 인출해 해외로 재송금하거나, 생활비 또는 명품 구입비 등으로 소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외국인 명의 대포통장을 이용하고, 돈 인출 시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주 옷을 갈아입었던 것으로도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 있는 총책을 특정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함께 현지 경찰과 협조해 신속히 검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피해 예방을 위해 △에스엔에스를 통한 무분별한 친구 추가 자제 △해외 교포·낯선 외국인·파병장교·외교관 등 온라인 교제 유의 △온라인 교제 시 부탁을 가장한 금전 요구에 송금 금지 △선물 발송을 이유로 배송업체 사이트 URL 접속 지양 등을 유의해달라고 했다.
경찰은 “로맨스 스캠 범죄는 대상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에스엔에스를 통해 알게 된 지인 또는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라도 금전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