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미숙아로 태어난 가람이는 뇌출혈과 뇌수막염으로 생존 확률이 낮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엄마의 정성과 800여명이 보태준 사랑의 손길로 하나하나 작은 변화를 이뤄내고 있다. 엄마는 현재 장애통합 어린이집에 다니는 가람이가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작은 심장이 멈출 때면, 엄마는 ‘하늘’을 잃을까 숨이 멎는다’ (4월·한달에 한번 꼴로 심정지 오는 7살 하늘이)
‘생활고 숨막혀도…‘희망’을 계속 불고 싶어요’ (6월·아픈 엄마와 사는 17살 민준이)
‘천장 무너진 한칸 방에 엎드려 “할머니랑 살 큰 집 그렸어요”’(7월·증조할머니와 같이 사는 7살 예림이)
‘폭력의 아픔 잊고…16살 진호가 찾은 은빛 희망 “스케이트 좋아요”’(11월·장애인 스케이터 코치 꿈꾸는 16살 진호)
기사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2021년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은 아프고 고립된 어린이와 가족,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매달 전했다.
나눔꽃 캠페인은 2009년부터 13년째 진행해오는 사회공헌 캠페인이다. <한겨레>와 구호·시민단체들이 함께 성별·연령·국적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조명하면 시민들이 이들의 손을 잡아줬다. 올해는 굿네이버스·대한적십자사·밀알복지재단·월드비전·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캠페인에 함께했다. 올해(3~11월) 나눔꽃에 손을 내민 시민들은 1만3047명으로, 약 2억268만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후원금은 금전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올해 나눔꽃 캠페인에 함께한 아홉 가정에게 용기를 줬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힘을 내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내디딘다. 나눔꽃 캠페인 9월(밀알복지재단)에 소개된 6살 가람이(가명)와 엄마도 그렇다.
27주 만에 790g의 극초미숙아로 태어난 가람이는 태어나자마자 뇌출혈이 오고 뇌수막염에 걸렸다. 가람이를 두고 많은 의사들이 ‘생존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52)는 가람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돌이 될 때까지 가람이는 각종 수술을 받았고,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한 달 치료비만 약 600만원이 들었다. 엄마는 모유를 냉동해 집이 있는 경기도 파주에서 병원이 있는 서울 왕십리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려 아이에게 갔다.
가람이와 엄마의 사연에 817분께서 약 4881만원의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가람이는 그동안 비용이 부담돼서 받지 못하던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비좁지만 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보금자리를 새로 마련했다. 엄마는 가람이가 어린이집 간 사이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자리도 찾고 있다.
가람이 엄마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예전에는 어려운 이들의 사연을 보면 나 아니어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생각을 하고 말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내준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힘들어도 막살면 안 되고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많은 분들의 후원에)숨통이 트이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만원, 2만원에도 힘들었는데…마음도 너그러워지고 그래요.”
발달장애 때문에 언어와 인지 능력이 3살 수준에 머무른 남자 아이 가람이는 외부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고 자주 불안해한다. 가위만 대도 놀라는 탓에 머리가 길어도 자르지 못하고 양 갈래로 묶고 다닌다.
엄마는 빠듯한 살림에도 가람이가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 여러 치료를 받게 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람이는 비용 부담에 받지 못하던 치료들을 시작했다고 한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감각이 균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감각통합치료 횟수를 늘렸다.
심리체육치료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심리체육치료는 가람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다양한 운동기구와 놀이기구를 다루며 치료를 받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람이가 감정표현을 서서히 하고, 엄마를 ‘엄’, ‘마’라고 음절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9월 당시 가람이는 ‘엄마’를 정확히 발음하지 못했다.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엄마는 가람이의 작은 변화에 힘이 난다.
“주사를 맞으면 아이가 울어요. 예전엔 그런 감정표현을 안 했어요. 아이가 피리도 못 불고 촛불도 못 껐어요. 근데 뿌뿌 하며 피리를 부는 정도까지 됐어요. 이제 생일에 초를 끌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른 아이에겐 쉬운 일상일지 모르지만 (가람이에겐)축하받아야 할 일이죠.”
가람이와 엄마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보증금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작은 월세방 위주로 알아봤지만 아이가 있다는 말에 수차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다행히 23㎡(7평) 남짓한 원룸을 서울에 구했다. 이전에 살던 경기도 파주보다 가람이가 다니는 병원과 치료실에 가까워졌다. 병원이나 치료실을 갈 때마다 반나절을 허비했는데 조금이나마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엄마는 줄어든 이동 시간을 활용해 잠시 그만뒀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는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야간조,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등 되는 대로 일을 해왔다. 매달 드는 가람이 치료비를 내고 치매가 있는 가람이 외할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다.
현재는 후원금으로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지만 언제까지 후원금에 기댈 수 없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게 급선무다. 일을 해서 가람이의 치료를 늘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가람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낮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고 있다.
집을 옮기면서 가람이는 이전과 달리 비장애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장애통합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다. 엄마는 가람이가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이 많았지만, 새 친구들이 가람이를 따뜻하게 대해줘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가람이가 안경을 쓰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가람이는 자주 흘겨보고 눈과 손의 협응이 잘 안 됐는데, 병원에서 안경을 쓰고 교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안경을 쓴 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고 행복감도 올라간 것 같다”고 전했다.
엄마는 가람이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기쁘기만 하다. 변화들이 모여 가람이가 지금보다 건강해질 것이라 믿는다. 엄마는 “예전에는 물건을 아무 데나 놓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생활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으니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여요. 비장애인처럼 될 순 없어도…사회 일원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안 받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을…” 엄마가 오늘도 어린이집으로, 치료실로 바쁘게 움직이는 건 가람이가 어른이 되서도 사회 생활을 잘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 더 살고 싶은 게 꿈이다”고 자주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 없이 장애아이가 살아가기엔 여전히 쉽지 않다. 엄마도 가람이의 미래가 늘 걱정이다. 엄마는 ‘조금 다른’ 가람이가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언젠가 제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올 거잖아요. 동생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런 날이 가람이에게도 올 텐데, 그때 가람이가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요. 그때는 가람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이승준·장예지 기자
gamja@hani.co.kr
사진 밀알복지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