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민석(27)씨가 만든 2021년 회고를 위한 템플릿. 김민석씨 제공
“지난 1년 동안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벽에 부딪혀가며 일했어요.”
“그랬군요. 여러 번 벽에 부딪혀 봤기 때문에 내년에는 손 안 대고 벽을 허물 방법을 찾으실 것 같아요.”
지난 29일 저녁 7시30분 서로 처음 보는 여성 직장인 13명이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에 모였다. 예년 같으면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고 있을 시간이다. 20대 중반 사회초년생부터 30대 후반 관리자급으로 일하는 여성까지, 경력도 일하는 업계도 천차만별인 이들은 여성 커리어 상호성장 커뮤니티 ‘뉴그라운드’가 주최한 비대면 모임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1년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공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째 이어지며 한해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연말 회고 모임’이 직장인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각종 송년회를 핑계로 술에 취하고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됐던 연말 대신 자신을 돌아보는 차분한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색다른 연말’에 눈을 돌리니 관련 상품도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는 연말 회고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템플릿(견본)을 판매하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기획전에는 일반 시민들이 만든 템플릿이 올라온다. 이 가운데 협업 툴 ‘노션’을 통해 지난 1년 건강, 인간관계, 코로나로 달라진 일상까지 다양한 항목을 기록할 수 있도록 구성된 템플릿이 관심을 모았다. 템플릿을 만든 직장인 김민석(27)씨는 “사실 새해라는 게 아무것도 안 하면 하루가 지난 것에 불과하지 않으냐”며 “차분히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자연스럽게 내년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7년째 판매되고 있는 ‘데이오프(day-off)’의 <연말정산>. 텀블벅 누리집 갈무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7년째 판매되고 있는 ‘데이오프(day-off)’의 <연말정산>은 한해를 돌아볼 수 있는 질문 100개가 적혀 있는 책자다. ‘올해 가장 한심했던 순간은’, ‘이 시국 끝나면 갈 곳은’ 등의 질문 주변에 빈칸을 둬 직접 채워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 후원자 1500명, 후원액 3000만원을 돌파했는데, 3년 전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이용자들의 1년 기록을 요약하거나 통계를 내는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고모임을 갖는 이들은 코로나19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연스레 회고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직접 만든 회고 템플릿으로 지인 2명과 모임을 가졌다는 직장인 김지선(33)씨는 “코로나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요란한 신년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자신의 한해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올해의 좋은 기억이나 가장 기분 좋았던 칭찬, 주변 사람에게 베푼 친절 등의 질문을 나누며 한해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회고모임을 주최한 ‘뉴그라운드’의 신지혜(38) 공동대표는 “최근엔 많은 직장인이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성과 평가와 별개로,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고 성장하려 했는지 나누고 싶어한다”며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며 약속이 취소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지선(33)씨가 만든 2021년 회고모임을 위한 템플릿. 김지선씨 제공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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