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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염전 지옥 벗어났지만…‘평범한 일상’은 복불복인가요?

등록 2022-01-19 04:59수정 2022-01-19 07:39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그후 8년…생존자 3인 인터뷰
민관 조사로 구출된 피해자 63명 일부 가족에게 갔지만
노숙인 쉼터 등으로 흩어져…“정부, 생존자 관리해야”
2021년 10월 29일 오후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염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2021년 10월 29일 오후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염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지난해 10월28일 박영근(54)씨는 전남 신안군 한 염전에서 7년 동안 임금체불과 감금을 겪었다고 폭로했다. 사건은 2014년 염전 노예 사건에 이어 ‘제2의 염전 노예 사건’으로 불렸다. 사건은 현재 진행중이다. 염전 업주 장아무개씨(49)는 지난해 12월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됐고, 경찰과 지자체 등은 합동으로 전라남도 내 염전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 추가 피해자들을 찾고 있다. 염전을 탈출한다고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이 바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한겨레>는 2014년 염전에서 탈출해 일상을 회복한 3명의 피해자들을 만나 ‘염전 이후의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지난달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 이곳에서 사는 지적장애인 채아무개(57)씨는 텔레비전 속 대선 후보들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전엔 부지런히 근처 발달장애인센터에서 청소일을 했고, 이제 막 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참이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따뜻한 햇빛이 채씨의 얼굴을 품었다. 채씨가 그렇게 바라던 ‘평범한 하루’가 흘러갔다.

채씨가 삶을 되찾기기까지는 무려 12년이 걸렸다. 2008년 어느날, 대전역 터미널 앞에 앉아있던 그에게 젊은 사내 2명이 소주 1병과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다. 그들은 대뜸 목포를 가자고 했다. 같이 가면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채씨는 싫다고 표현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사내들과 목포역으로 향했다. 채씨 앞에 염전 주인이라는 홍아무개씨가 나타났다. 자신이 숙박비와 밥값을 계산해줬다며 그를 차에 태웠다. 도착한 곳은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염전이었다.

채씨는 6년 동안 섬에 갇혔다. 염전에서 매일 18시간씩 일했지만 통장은 본 적도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창고에 끌려가 각목과 삽날, 손으로 맞았다. “도망가려고 했는데 부둣가에서 표 끊어주는 사람들이 안 태워줬어. 전부 다 한통속이여가지고.” 2014년 1월, 그의 동료 김아무개(당시 40살)씨가 읍내에 이발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에게 구출해달라고 적은 편지를 몰래 우체통에 넣지 않았더라면, 채씨는 지금도 염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씨의 용기로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 공론화됐고 민관 합동 조사로 채씨를 비롯해 63명의 피해자가 발견됐다.

채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1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2014년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 일부는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해자 2명은 전남 내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고 있고, 일부는 염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이들이 ‘염전 이후의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채씨는 장애인단체 등의 도움으로 일자리와 살 집을 얻었다. 그는 염전에서 나온 직후 장애등록을 마치고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도란도란’에서 자립을 준비했다. 2020년 2월 관악구에서 방 2칸짜리 집을 얻어 독립했다. 여전히 염전이 남긴 상흔은 짙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고, 수차례 뺨을 맞은 탓에 귀는 일그러졌다. 그래도 채씨는 현재를 만족한다. “여기가 나아요. 염전은 밤낮없이 나가야 되니까.” 그는 활동지원사와 ‘도란도란’에서 연을 맺은 사회복지사들, 시설에서 사귄 친구들과 연락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왼쪽부터 전남 신안 염전에서 6년간 일했던 채아무개(57)씨, 신안 염전에서 7년간 일했던 김아무개(59)씨, 신안 염전에서 10년간 일했던 백아무개(57)씨. 이우연 기자
왼쪽부터 전남 신안 염전에서 6년간 일했던 채아무개(57)씨, 신안 염전에서 7년간 일했던 김아무개(59)씨, 신안 염전에서 10년간 일했던 백아무개(57)씨. 이우연 기자

서울 관악구에 사는 염전 피해자 김아무개(59)씨도 후견인을 만나 자립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신의도 염전에서 약 7년 동안 일한 김씨는 전남의 한 노숙인쉼터와 ‘도란도란’을 거쳐 2020년 1월 독립했다. 현재는 사회복지관에서 매일 4시간씩 계단 청소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는 “완전 내 세상”인 현재가 행복하다고 했다. 2014년부터 김씨의 후견인을 맡은 송남영 경기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탈시설 후 고립될 수 있는 김씨의 안전망이 되주려고 한다. 아저씨(김씨)와 하루에도 세네번씩 전화통화를 주고받으며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이들의 삶을 가른다. 10년 동안 염전에서 착취를 당했던 경계선 발달장애인 백아무개(57)씨는 현재 일자리가 없다. 그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단체의 도움으로 2018년 서울에 올라왔고, 2020년 3월 집을 얻었다. 그러나 경계선 장애가 있는 그는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넘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이 안 됐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 지원에서 배제되는 등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백씨는 “염전에서 일을 너무 많이 해 일할 마음도 잘 안 생긴다”며 “경제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염전에서의 삶이나 지금 삶이나 같다”고 말했다.

염전 피해자 등 장애인 노동착취 피해자들의 삶이 운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찾고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사후 관리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와 노동착취 피해 장애인을 지원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2017년부터 전국 19곳에 설치됐으나 대부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피해 장애인 조사 업무만으로도 벅차 한다. 송남영 관장은 “장애인복지법에 민관협력을 통해 사례관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운용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의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지방정부가 중심이 돼 법률이나 주거, 일자리 지원 등을 관장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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