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콜센터 노동자를 연구해 책 <사람입니다, 고객님>를 최근 출간한 문화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콜센터 노동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이다. 갑질 고객의 막말이 쏟아져도 이들은 상냥한 목소리로 받아내야 하는 처지다. 2014년과 2017년 콜센터 직원과 현장실습생이 고객 폭언 등을 견디다 못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듬해 고객 응대직원 보호 의무를 사업자에게 지우는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이 도입·시행됐다. 우리 사회는 할 일을 끝낸 걸까.
지난달 ‘콜센터의 인류학’을 다룬 <사람입니다, 고객님>(창비)을 펴낸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콜센터 업무는 감정노동이라는 단어 하나로 국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 교수는 2012년부터 콜센터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뒤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불리게 된 여성 하청노동 현실을 388쪽의 두툼한 결과물로 묶어냈다. 지난달 26일 김 교수를 만났다.
금연클리닉 등에서 일해온 김 교수는 유난히 높은 콜센터 여성 노동자 흡연률에 주목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10년 그가 만난 콜센터 노동자들만 120여명. 김 교수는 ‘미소 띤 음성’이라는 감정노동만 주목해서는 ‘콜수’를 채워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피로, 질병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봤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끊임없이 고객 상담을 하는 노동자들은 어깨·목·허리·손목·무릎 등 다양한 근골격계 통증을 얻게 된다. 한 콜센터 노동자는 어깨 결림과 손목 통증을 직업병을 넘어선 “일종의 의무”라고 했다. 다른 콜센터 노동자는 “전화기로 미싱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콜센터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청력손실, 탈모, 피부질환, 식도염, 수면장애, 생리불순, 안면마비,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다양했다.
콜센터는 이들이 처리하는 콜수를 늘리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려 창밖조차 보지 못하게 환경을 통제한다. 2020년 3월 서울지역 첫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콜센터에서 나온 것도 이런 노동조건 때문이었다. 대신 콜센터는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흡연을 ‘장려’한다. 흡연을 위해 오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무실 테라스에 ‘쾌적한’ 흡연장을 마련해 둔 곳도 있다.
언제든 대체되기 쉬운 일자리라는 인식이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유지되는 토대다. 김 교수는 “콜센터 업무가 친절한 여성 목소리만 내면 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한다. 김 교수는 “콜센터 노동자는 각종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전문직이다. 재난지원금, 코로나19 예방접종 관련 정보도 교육은 거의 없이 스스로 공부해 제공해야 했다. 이들이 하는 정보노동의 가치는 고객도, 시민도, 업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콜센터 상담사의 낮은 처우는 여성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회 구조와 직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내 고용시장에서 경력단절 또는 저학력 여성이 심한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빨리 취업할 수 있는 업계는 콜센터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만난 여성노동자들은 콜센터를 ‘마지막 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콜센터 노동조건을 상징하는 초단위 감시 시스템은 더는 콜센터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김 교수는 “파놉티콘(원형감옥) 같은 전자감시망 등 콜센터의 노동 감시 시스템은 결국 모든 노동 영역으로 벤치마킹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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