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전통문화건축 아비지 정종남 대표
한옥 목수 정종남(51) 전통건축문화 아비지 대표는 4년 전 전남 장흥 관산읍으로 귀촌했다. ‘아비지’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든 백제의 대장 목수 아비지 이름에서 따왔다. 그 자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옥을 지으면서 전통 마을이나 고택을 많이 봤고, 전통건축을 논문이나 책 등 글로도 파고들어 “집 좀 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동네 근처엔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을만한 고택이 별로 없다고 예단했다. 그런데 이웃 동네인 방촌마을의 한 고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방촌마을 곳곳에 자리한 고택들은 전라도 부농가의 건물 배치 모습이 잘 드러나 흥미로웠다. 그는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성주 한개마을 같은 경북 내륙 고택들과 다르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가치가 있는 집들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장흥·보성·순천 등 남도 해안 7개 시·군 문화재의 이야기를 담은 <시골마을 오래된 건축 뜯어보기>(베네치아북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창립 사무국장 출신
“10년 전 한옥학교 재미 느껴 목수로”
전국 돌며 민가부터 문화재 보수공사 4년 전 전남 장흥 시골집 구해 귀촌
보성·순천 등 7개 시·군 문화재 탐구
‘시골마을 오래된 건축 뜯어보기’ 펴내
정 대표는 이 책에서 택, 정자, 사찰, 석탑, 돌다리, 원림(園林·별장 또는 전원주택), 향교, 객사, 읍성 등 “지정 등급은 낮아도 알맹이 꽉 차고 볼거리 풍성한 우리 주변의 문화재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장흥 위씨가 400여년을 살아온 집성촌인 방촌마을에는 고택 6개가 남아 있어 1993년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죽헌고택은 지방문화재지만 조선 후기 한옥의 세부 구성요소가 잘 남아 있는 집이다. 정 대표는 “안방 문의 창 문양 한 칸을 다른 것보다 크게 만든 뒤 한지 대신 유리를 끼워 문을 열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한 ‘눈곱재기 창’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헛간채는 논흙을 볏짚에 이겨 발라 유난히 거무스름한데 “건축재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실학자 위백규(1727~98) 선생의 생가인 존재고택엔 안채 앞에 서재가 있어 집 전체가 담백한 멋을 풍긴다. 보성 봉강리의 정씨 고택은 “전남 해안가 양반집 배치 구조를 잘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공훈을 세운 정씨의 조상들이 50년에서 100년 안팎 간격으로 중건 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집이다. 정 대표는 “정씨 고택의 건축주는 처마 끝 선을 화려하게 연장하지 않아 홑처마 선의 소박하고 단정한 멋을 얻었다”며 “지방 부호들의 호화주택들과 달리, 위세를 과시하는 과한 치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당 공간을 별도로 구획하거나,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 외부인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내외담’을 둔 점도 특징적이다.
정 대표는 장흥에서 고택 리모델링 공사를 하던 중 3채의 멋진 정자도 발견했다. 조선 후기 양식의 전형적인 호남형 정자인 용호정·경호정·부춘정이다. 그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이나 교류의 장소로 쓰인 정자는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 짓는다”고 말했다.
원림은 주거지에서 벗어나 휴식·교류 등의 목적으로 지은 특별 거주지다. 월출산 시골 마을에 감춰진 강진 백운동 원림이 대표적이다. 보성 강골마을 열화정은 정자이자 원림으로 지정됐다. 선암사 승선교, 보성 벌교의 홍교 등 무지개다리 이야기, 장흥 보림사와 화순 운주사, 강진 무위사 등 사찰의 내력 등도 흥미롭다.
정 대표는 앞서 지난해 10월 <한옥 목수의 촌집 수리>를 펴냈다. 경주·안동·성주 등의 고택과 순천 낙안 민속마을 등 전국 전통마을 고택, 청도 적천사와 장흥 보림사 등 천년고찰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화재를 수리했던 그가 2018년 120년된 민가를 발견한 뒤 수리한 경험을 녹여낸 실용서다. 정 대표는 “한옥 신축법도 소개했지만, 주된 초점은 시골에 있는 오래된 집을 고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말했다.
장흥 관산읍에서 300평 터에 12평·15평으로 지은 민가 2채가 눈에 들어와 사들인 그는 귀촌한 뒤 돌담을 자연석으로 직접 쌓아 지었다. 윗채 보수작업이 끝나는 오는 3월께 ‘나 한칸 달 한칸 청풍 한칸’(나달청)이라는 게스트하우스로 문을 열 예정이다.
한옥 목수가 되기 전 그는 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아왔다. 대학생 시절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시작한 그는 2004년 국제금융자본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는 투기자본감시센터 창립에 참여해 2006년까지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하던 2012년 경북 청도의 한옥학교를 만”난 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계기가 됐다. 한옥학교 석달 동안 연장들의 이름을 익히고 동료들과 실제로 집을 짓는 작업을 해보면서 활력을 느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초보 목수로 20~40년 경력의 형님 목수들과 전국을 떠돌며 일을 배웠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시민활동가에서 한옥 목수로 변신한 정종남 전통건축문화 아비지 대표가 전남 장흥 관산읍의 한옥 자택 마루에 앉아 있다. 시민활동가에서 한옥 목수로 변신한 정종남 전통건축문화 아비지 대표가 전남 장흥 관산읍의 한옥 자택 마루에 앉아 있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400/48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3886.jpg)
시민활동가에서 한옥 목수로 변신한 정종남 전통건축문화 아비지 대표가 전남 장흥 관산읍의 한옥 자택 마루에 앉아 있다.
“10년 전 한옥학교 재미 느껴 목수로”
전국 돌며 민가부터 문화재 보수공사 4년 전 전남 장흥 시골집 구해 귀촌
보성·순천 등 7개 시·군 문화재 탐구
‘시골마을 오래된 건축 뜯어보기’ 펴내
![전남 장흥 방산마을 장흥위씨 청계공파 지장손의 집인 죽헌고택의 ‘눈곱재기 창’. 정종남씨 제공 전남 장흥 방산마을 장흥위씨 청계공파 지장손의 집인 죽헌고택의 ‘눈곱재기 창’. 정종남씨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369/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3884.jpg)
전남 장흥 방산마을 장흥위씨 청계공파 지장손의 집인 죽헌고택의 ‘눈곱재기 창’. 정종남씨 제공
![전남 보성 득량면 강골마을에 있는 열화정. 19세기 중반 이재 이진만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최근 인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MBC)의 촬영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정종남씨 제공 전남 보성 득량면 강골마을에 있는 열화정. 19세기 중반 이재 이진만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최근 인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MBC)의 촬영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정종남씨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5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3885.jpg)
전남 보성 득량면 강골마을에 있는 열화정. 19세기 중반 이재 이진만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로, 최근 인기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MBC)의 촬영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정종남씨 제공
![정종남 목수가 4년 전 100년 고택을 수리해 귀촌한 전남 장흥 관산읍의 집. 정종남씨 제공 정종남 목수가 4년 전 100년 고택을 수리해 귀촌한 전남 장흥 관산읍의 집. 정종남씨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5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3891.jpg)
정종남 목수가 4년 전 100년 고택을 수리해 귀촌한 전남 장흥 관산읍의 집. 정종남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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