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7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핵심 인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게 서로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채용 청탁자로 지목된 권 의원은 무죄를, 권 의원실 비서관 등을 채용하도록 지시한 최 전 사장에겐 징역 3년형을 확정한 것이다.
두 사람의 하급심 판결문에는 권 의원 밑에서 비서관(5급)으로 일한 김아무개씨를 강원랜드에서 채용한 것이 죄가 되는지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최흥집 사장이 왜 김씨 채용에 공을 들였는지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최 전 사장 판결문을 보자. 최 전 사장은 2013년 11월 김씨로부터 ‘신축 예정인 워터파크 쪽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부탁과 함께 이력서를 건네받았다. 최 전 사장은 직원들에게 “김씨가 합격되게 모든 필요한 조치를 하라” “문제없이 채용되게 업무처리를 잘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당시 워터파크는 수질·환경 전문가 채용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최 전 사장 지시를 받아 채용공고가 나갔다. 지원 자격요건은 김씨가 소지한 자격증에 맞게 변경됐다. 폐기물처리산업기사 자격증이 추가됐고, 우대사항이던 건설안전기사 자격증은 필수사항으로 변경됐다. 김씨는 지원자 33명 중 유일하게 채용조건을 모두 충족했고, 수질·환경 분야 전문가 채용에 최종합격했다. 2009년 11월부터 2013년 12월24일까지 권성동 의원 지역 비서관으로 일한 김씨는 곧장 강원랜드 과장으로 이직했다.
최 전 사장 판결문에는 ‘왜’가 없다. 당시 김씨가 어떤 배경에서 공기업 사장에게 직접 자신의 이력서를 건네주며 채용을 부탁할 수 있었는지, 최 전 사장은 왜 김씨를 합격시키기 위해 직원들을 채근했는지, 직원들은 왜 채용조건까지 변경해야 했는지, 1·2·3심 판결문을 합치면 100쪽이 훌쩍 넘지만 그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 인사담당자에게 김씨가 단독 채용될 수 있게 채용조건을 변경하도록 지시하는 등 맞춤형 채용을 지시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왜’는 권성동 의원 판결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비서관 김씨가 최 전 사장에게 2013년 11월 이력서를 건네주던 전후 사정이 나온다. 권 의원은 김씨 채용을 최 전 사장에게 요구한 뒤 김씨가 이력서를 최 전 사장에게 전달했으며, 권 의원이 다시 최 전 사장에게 전화해 채용을 요구했다는 것이 공소사실 요지다.
재판 과정에서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와 지역사회 현안이 있을 때 (권성동 의원) 도움을 받기 위해 채용 청탁을 들어줬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권 의원이 채용 청탁했다는 의심이 가기는 한다”면서도 “권 의원이 직접 청탁한 사실을 검사가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최 전 사장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 권 의원이 설령 청탁을 했더라도 구체적 채용 과정을 협의하거나 진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고 볼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채용 청탁을 들어줬다며 최 전 사장에게 유죄를 확정한 대법관들은 청탁자로 지목된 권 의원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2017년 <한겨레> 보도로 시작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2018년 안미현 검사는 ‘수사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18일 “당시 수사 때 검찰 내부에서는 ‘권성동 의원이 항상 검찰 편을 들어주는데 (수사해) 미안하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수사가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권 의원은 수사 당시 법무부·검찰을 소관기관으로 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안미현 검사는 대법원 선고 뒤인 18일 페이스북에 “청탁으로 합격한 사람도 있고, 청탁을 받아줘서 합격시킨 사람도 있는데 청탁한 사람은 없는…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도 있는 법이니까”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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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강원랜드 채용비리’ 청탁은 무죄, 채용은 유죄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1574.html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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