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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아 아닌 고아, 죄인 아닌 죄인…평생 ‘한센 가족’ 낙인, 한스러워요”

등록 2022-04-23 07:29수정 2022-04-23 17:36

[한겨레S] 커버스토리
소록도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센 가족들은 일제강점기와 이후 약 80년이 흐르도록 까닭 없는 차별과 편견의 벽에 가로막힌 채 살고 있다. 지난 19일 한센 가족 피해자인 강선봉씨가 전남 고흥 소록도 진입로 앞에 서 있다. 고흥/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센 가족들은 일제강점기와 이후 약 80년이 흐르도록 까닭 없는 차별과 편견의 벽에 가로막힌 채 살고 있다. 지난 19일 한센 가족 피해자인 강선봉씨가 전남 고흥 소록도 진입로 앞에 서 있다. 고흥/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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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 가족에 대한 보상금의 지급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귀하가 청구한 보상금을 지급받을 권리의 인정을 결정해 이를 통지합니다.’

지난달 15일 박아무개씨는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 명의로 된 한센병 가족 보상 결정통지서를 받았다. 무미건조한 투의 결정문 끄트머리엔 “청구한 돈은 지정한 은행 계좌로 입금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보상금액 ‘180만엔’(약 1730만원)이란 숫자가 적혔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였던 박씨 아버지 같은 한국인들을 집단적으로 강제 격리했다. 땅끝 마을에서 다시 배로 5분 거리인 소록도. 일제의 ‘조선 나예방령’으로 이곳에 격리됐던 한국인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기억하는 곳이다. 작가 한하운은 이곳으로 난 길을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시 ‘전라도길―소록도로 가는 길’)이라고 묘사했다.

일제강점기 ‘무서운 전염병’, ‘유전병’ 등
오류로 끔찍한 강제격리·절멸 정책

‘한센 가족’이란 주홍글씨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박씨 아버지는 헤엄을 잘 쳤다고 한다.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에 일본 순사(경찰)가 나타난 건, 1937년 그가 한창 꿈 많던 스무살 때였다. 손과 다리에 한센병 증세인 결절이 자랐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강제로 끌려간 곳이 전남 고흥 소록도였다. 당시 일본은 자국뿐 아니라 식민지 땅에서도 한센병 환자를 죽을 때까지 강제 격리하며, 한센병 앓는 이들이 대를 잇지 못하도록 하는 절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박씨 아버지는 소록도에서도 악명 높던 벽돌공장에서 강제로 일했다. 전쟁물자였던 붉은 벽돌을 만들기 위한 공장이 소록도에 세워졌고, 한센병 환자들이 동원됐다.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가혹한 매질이 가해졌다. 견디지 못한 이들이 섬을 탈출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기도 했다. 더 끔찍한 것은 이른바 ‘한센병 절멸 정책’에 따른 강제 임신중절, 단종이었다.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은 격리수용소에서 고생 끝에 죽고, 해부되어 두번 죽고, 화장당해 세번 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권유린을 당했다.

박씨 아버지는 고향에서 몸으로 익힌 헤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바다를 건너 소록도에서 탈출한 박씨 아버지는 1939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던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 박씨를 낳았다.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닌데도, 환자와 병력자들의 자녀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의 ‘미감아’로 불렸다. 아버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자식에게 대물림됐다. 박씨는 일제강점기에 새겨진 ‘한센병자 혹은 환자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 한센병 환자를 상대로 한 일제의 근거 없는 강제격리 정책 탓에 가족이 강제로 흩어지고, 해방 뒤에도 80년 가까이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 환자 가족보상 1호 청구인’ 강선봉(83)씨 삶도 다르지 않다. 19일 전남 고흥 소록도 인근 녹동항에서 <한겨레>와 만난 강씨는 “우리는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쫓겨난 것이다. 갈 데가 없으니까 공동묘지 같은 데 살며 걸식을 했다. 가족들이 그 동네에서 살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랑 함께 살 수도 없었다”고 했다. 한센병을 앓던 강씨 아버지는 1929년부터 8년간 소록도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탈출했지만, 후유증으로 1943년 숨졌다. 해방이 됐어도, 일제가 남긴 한센병 환자 격리 정책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번엔 한센병을 앓던 강씨 어머니가 소록도에 격리됐다. 강씨는 철조망 너머 보육원에서 자랐고, 한달에 한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강씨마저 한센병에 걸렸다. 강씨는 자신의 책 <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에서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중략) 발가락이야 어찌 되면 어떠냐. 어머니 곁으로 갈 수 있는데…”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책 제목에서 소록도는 ‘천국’(天國)이 아닌 천하게 여겨졌다는 뜻의 ‘천국’(賤國)이다. 강씨는 자신이 한센병 차별 피해자인 동시에 아버지가 강제격리·노동 끝에 탈출했다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국인으로는 다섯번째 한센 가족 피해보상 대상이 됐다. 그는 <한겨레>에 “부모들이 자식의 삶을 위해 강제격리 같은 차별과 수치스러운 삶을 일부러 지우면서 살아왔는데, 밟힌 자들을 향해 보상을 위해 ‘밟힌 흔적’을 찾아오라고 하는 게 현실”이라며 “한센병 환자와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해방 뒤 한국에서도 여전했는데 왜 한국 정부는 어떤 반성이나 사과가 없는지도 따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인 가족 1호 보상자가 된 박아무개씨 역시 한센병 환자를 부모로 뒀다는 이유로 상처 많은 삶을 살았다. 그는 21일 보상청구를 맡은 변호인과의 면담에서 “차라리 고아라면 아버지는 어떻게 죽었고 얘기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다”며 부모의 죄도, 자식의 죄도 아닌데, 고아 아닌 고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평생을 한스러워했다.

“(한센병 환자의) 자식도 한센병 환자다, 전염되고 유전된다, 천벌이다, 불치병이다, 라고들 말했어요. ‘미감아’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요. 심지어 ‘사람 잡아먹어야 치료된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떠돌았어요. 저만 해도 연애 끝에 약혼까지 했는데 ‘미감아’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파혼당했습니다. 이제껏 버림받고, 천대받아 왔는데 이제라도 사람 대우를 받으며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가족들도 지금까지 차별 시달려
최근 일 정부 상대 한국인 10명 ‘가족보상’

잘못 없이 ‘천형’을 살았던 이들

삶의 바닥까지 내몰렸던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첫 보상을 시작한 게 지난해 12월15일이다. 앞서 2016년 일본인 한센병 가족 피해자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3년 만에 승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의회는 “국가와 정부가 반성과 위로, 명예회복의 뜻을 담았다”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대만 등 일제강점기 식민 국가의 한센 가족들도 보상받도록 관련 법을 마련했다. 곧바로 한센병 강제격리 피해자들을 돕는 한·일 공동변호인단이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 가족 피해자들을 찾아 나섰다. 지난해 4월26일 한국인 가족 피해자 61명의 첫 보상청구서가 일본 쪽에 제출됐다. 이후 70여명이 추가 보상청구에 나섰고, 22일 현재 10명의 보상이 확정됐다. 한센병 환자 본인의 피해 보상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일 두 나라에서 차근차근 이뤄져왔지만, 이들 못지않게 아픈 삶을 살았던 가족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한센병은 ‘천형’이 아니다. 전세계 인구 95%가 자연 저항을 갖고 있고, 감염 환자인 경우에도 1940년대 이미 치료약이 개발돼 손쉽게 완치가 가능하다. 치료제 리팜피신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체내 나균 99.99%가 전염력을 잃는다. 일본 정부도 2005년 ‘한센인 문제에 관한 검증회의’를 통해 “일본에서는 과거 한센병 의학의 권위자로 간주된 국립요양소 원장 등의 (잘못된) 주장으로 격리가 지속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무서운 전염병’ 내지 ‘유전병’으로 잘못 취급된 한센병에 대한 편견은 지금까지도 온전히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자료조차 많지 않지만, 그나마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한센인 인권실태 보고서’에서는 “한센병은 전염성이 매우 약한 병으로 완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 국가나 사회로부터의 편견, 격리, 차별에 시달린 경험을 갖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국민인식 조사에서 ‘가족이 한센인 자녀와 결혼할 때 찬반 여부’를 물었는데, ‘반대하겠다’는 의견이 86.7%에 이르렀다. 한센인에 대한 일반 국민 인식에서도 ‘차별과 기피를 하고 있다’는 의견이 92.5%에 이른다. 이번에 가족 피해 보상자에 포함된 장아무개씨는 “(한센병 환자였던) 형님이 살아 있었는데도, 주변에 숨기고 살았던 사실이 형님이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6일 한·일 변호인단 회견
“가족으로 인권지평 넓혀…
추가 피해 확인 방침”

반성, 사과, 명예회복 속도 내야

일본의 한센가족보상법은 1945년 8월15일 해방 이전에 발병한 환자의 가족(부모, 자녀, 배우자, 형제자매) 가운데 해방 전 출생해 생존한 피해 가족들을 보상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박씨 같은 한센인의 자녀 또는 배우자는 180만엔, 형제자매는 130만엔을 보상받을 수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자료를 보면 일제강점기 강제격리 피해자가 소록도에만 6천여명에 이르는 만큼 아직 생존한 가족 피해자 수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2일 현재 보상청구를 낸 사람은 모두 130여명뿐이다. 보상을 받으려 해도 피해 가족 대부분이 이미 80살 넘은 고령인데다, 해방 이전 부모·형제의 한센병력과 강제격리 등 피해 사실 등을 입증하는 일이 녹록지 않다.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해 또 다른 가족들의 2차, 3차 피해를 걱정해 나서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한·일 한센인권변호단은 오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강점기 한센 가족 피해자들을 계속 찾는다는 계획이다. 한국 한센인권변호단 조영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는 <한겨레>와 만나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문제가 가족까지 확대 인정된 만큼, 더 많은 피해자가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도록 해 인권 지평을 넓힐 것”이라며 “한·일 민간 영역에서 협력으로 일제강점기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반성과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물꼬를 텄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강선봉씨가 제1차 한국 한센 가족 피해자 보상청구 기자회견에서 비대면으로 피해 증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강선봉씨가 제1차 한국 한센 가족 피해자 보상청구 기자회견에서 비대면으로 피해 증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흥/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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