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교육부는 미성년자(교수 본인의 자녀나 동료 교수 자녀 등)를 국내 논문 공저자로 올린 연구 부정행위 96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2명의 일반 연구자가 국내 고교생이 공저자로 참여한 해외 논문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단지 ‘궁금해서’ 전체 논문 조사에 나섰던 이들은 “일부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서 논문 작성을 악의적으로 활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석사인 강태영(27)씨와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 과정에 있는 강동현(33)씨는 지난 18일 2001년부터 20년간 국내 213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 참여한 해외 논문 558건을 전수조사한
연구 결과를 에스엔에스 공개했다. <한겨레>는 전화와 메신저를 이용해 두 사람과 인터뷰했다.
강동현씨는 26일 <한겨레>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사태 이후 고등학생들이 저자로 올라간 국내 학술 논문에 대해서는 보도가 꽤 있었던 만큼, 영어 논문 현황은 어떨지가 궁금했다”고 연구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전수조사 결과 △고등학생 저자 980명 가운데 최소 67%가량이 단 1회만 논문 출간 △2014년 학교생활기록부에 논문 등재를 금지하자 논문 수 급격히 감소 △일부 특목고 논문에서 중등교육과 관련이 적은 컴퓨터공학·의학 비중이 높음 △공저자 네트워크에서 ‘교사 1명에 학생 여러명’ ‘대학 연구자 여럿에 학생 1명’ 등 의심스러운 구조가 확인됐다고 한다.
강동현씨는 “고등학생이 논문의 주장과 방법론에 저자권을 부여받을 만큼 이해하고 기여했는지 의심스러운 사례, 학술 논문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낮은 사례 등이 있었다”고 했다. 강태영씨는 “부유층·특목고 학생들이 논문 작성이라는 학문적 활동을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강태영씨와 강동현씨가 작성한 ‘[Research]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갈무리.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것을 반기면서도 연구 취지가 제대로 읽히길 바랐다. 강태영씨는 “우리 연구를 두고 정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저희 결론은 절대 그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고등학생 논문 양산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입시정책이 자주 바뀔수록 부유층만 유리하다”고 했다. 강태영씨는 “문제의 핵심은 돈으로 학벌까지 사려고 부정한 방법을 저지르는 학부모·학교와 이에 동조하는 외부인이 있다는 것이다. 입시정책 변동성이 커질수록 적응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무슨 정책을 쓰든 부유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불평등이 고등학생 논문 뒤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고등학생 논문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부는 미성년자 논문 부정행위 결과를 발표하며 “개인정보와 명예훼손”을 이유로 실명 등 구체적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석사인 강태영(27)씨(왼쪽)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강동현(33)씨. 본인 제공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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