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 외벽에 전시된 ‘어린이말씀’ 대형 래핑 아래에서 어린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린이(주식)·골린이(골프)·요린이(요리)·캠린이(캠핑)…’
어떤 분야의 앞글자와 ‘어린이’라는 단어를 합성에 실력이 낮은 초보를 뜻하는 이러한 말은 언젠가부터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흔히 사용되고 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린이’라는 표현을 이제는 쓰지 말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공공기관의 공문서, 방송, 인터넷 등에서 ‘~린이’라는 아동 비하 표현이 사용되지 않도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 점검 등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진정인 ㄱ씨는 초보자를 ‘~린이’라고 부르는 것이 차별적 표현이라며, 공문서나 방송 등에서 사용을 금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인권침해의 구체적 피해 등이 특정되진 않으므로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진정을 각하했다. 그러나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아동은 권리의 주체이자 특별한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라며 “여러 분야에서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아동을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권위는 “이런 표현이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됨으로써 아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평가가 사회 저변에 뿌리내릴 수 있고, 이로 인해 아동들이 자신을 왜곡·무시하고 비하하는 유해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유튜브 등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잼민이’라는 표현 역시 아동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잼민이’는 게임 채팅, 인터넷 방송 등에서 어설픈 언행이나 행동으로 주변에 불편함을 주는 이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 쓰이는데, 현재는 어린이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확장됐다. 과거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던 ‘초딩’, ‘급식’ 등과 비슷하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소수자들에게 우스운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것은 소수자들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뭉뚱그리고, ‘일반적·정상적 사람’과는 다른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차별을 재생산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이들은 별도의 존칭 없이 이름만 부르는 일은 나이 어린 사람을 당연히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시각도 반영돼있다고 짚기도 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린이의 사전적 의미를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어린이는 미숙함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높임말이라는 것을 알리는 인식 개선 캠페인을 온라인에서 5∼6월 진행한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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