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3일 제73주기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에서 한 유족이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고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제례를 지내고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 4·3사건으로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태어난 김아무개(73)씨는
큰아버지 딸로 입적됐다. 4·3으로 아버지가 숨지자 할아버지가 손자를 자기 아들로 호적에 올린 강아무개(74)씨 같은 사례도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으로 유족들은 손쉽게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을 신청할 수 있게 됐지만, ‘호적상 유족’이 아닌 김씨 등은 배제됐다.
그동안 법적 가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던 4·3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가족관계등록부를 손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8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현행 대법원규칙은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 신청권자를 4·3특별법의 희생자와 유족으로만 규정한다. 법적으로 정정 과정이 복잡한 가족관계를 희생자나 유족에 한해 쉽게 고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유족임에도 법적으로 유족이 아닌 김씨 같은 이들이 가족관계를 고칠 기회는 대법원규칙 때문에 막혀 있었다.
개정안은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이 가능한 신청권자를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4·3특별법으로 희생자나 유족으로 결정된 이에 더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결정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 대상이 된 사람이 포함됐다. 법적인 유족은 아니어도 실제 유족이 맞는다는 위원회 판단만 있다면 김씨 같은 이들도 가족관계를 정정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도는 제주4·3유족회와 4·3 희생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에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사례를 접수했다. 김효태 대법원 공보관은 “지속적으로 제주도 쪽과 협의해 신청권자를 확대하는 취지의 입법예고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는 오는 17일까지 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4·3사건 관계 법규 등은 계속 손질되고 있다. 지난해 2월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4·3 당시 수형 생활을 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 규정 등이 신설됐다. 지난해 12월에는 4·3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법률에 명시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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