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하고 재판부에 ‘빈곤 입증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법원이 국선변호인 선정을 거부하고 판결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ㄱ씨는 지난해 4월 경기도 평택시 교차로에서 직진 금지 신호를 무시하고 이륜차를 몰고 직진하던 중 맞은편에서 좌회전하던 ㄴ씨의 차량 앞범퍼 부분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ㄴ씨는 수리비 85만원 상당의 차량 파손 피해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는데, ㄱ씨는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도망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1심 재판부에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피고인만 출석한 상태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ㄱ씨는 국선변호인 선정을 요청하며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진 않았지만, 재판부에 월 20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는데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은행계좌 출금이 제한됐고, 가족과 함께 사는 월셋집도 압류당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제출한 상태였다. 2심도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빈곤으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다는 점에 관한 소명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을 해 변호인이 공판심리에 참여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신청청구를 기각한 채 공판심리를 진행했으므로, 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효과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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