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직 3개월이면 해고한다’는 취업규칙이 있다고 해도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여야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ㄱ씨가 선박 건조회사 ㄴ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1997년 4월 ㄴ사에 입사한 ㄱ씨는 2015년 1월 인사고과평가에서 최하위인 디(D) 등급을 받고 대기발령됐다. ㄴ사는 ㄱ씨에게 두 차례 업무과제를 부여했으나 ㄱ씨는 통과하지 못했고, ㄴ사는 그해 6월 무보직 상태로 3개월을 넘긴 ㄱ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 회사 취업규칙에는 ‘사원이 무보직으로 3개월이 지났을 때는 해고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ㄱ씨는 회사의 대기발령 및 해고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ㄱ씨에 대한 대기발령 및 해고 모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은 ㄱ씨가 가족의 맥줏집 운영에 관여하면서 직무에 지장을 줬고, 대기발령 이후 부여된 과제에서 연속으로 합격선에 미달하는 점수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해 대기발령 및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ㄱ씨에 대한 대기발령은 정당하지만, 해고의 정당성은 다시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취업규칙에서 정한 해고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때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노동자의 전문성 정도, 근무능력 부진 정도와 기간, 사용자가 교육 등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부여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원심은 ㄱ씨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부진이 상당 기간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향후 개선 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 여부를 심리해 판단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채, 단지 대기발령 기간 ㄱ씨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라며 원심의 해고 판단 부분을 파기해 원심법원에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이현복 대법원 공보연구관은 “대법원이 지난해 2월 판결에서 설시한 저성과자 해고의 정당성 법리가 ‘취업규칙 등에 따라 저성과를 이유로 한 대기발령 후 일정 기간 경과 시 자동해고된다는 조항에 따라 해고된 경우’에도 적용됨을 명확히 선언한 판결이다. 취업규칙이 정한 해고사유가 발생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해고를 정당하다고 본 원심 판단의 잘못을 지적하고 파기·환송했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