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소속단체 회원들이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성역 없는 결과 발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환경연대 제공
정부가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1년 반가량 발표를 미뤄온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조사 착수 4년10개월 만에 공개된 결과 보고서는 일회용 생리대가 외음부 가려움증·통증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 조사’ 보고서를 보면, “(일회용 생리대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생리 관련 증상 유병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했다”고 나와 있다. 보고서는 또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생리를 하는 동안 외음부 가려움증, 통증, 뾰루지, 짓무름, 생리통, 생리혈색 변화, 두통 등 생리 관련 증상 위험을 높이는 것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지난해 11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나,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조사의 책임 연구자인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이날 <한겨레>에 “그간 식약처는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 화학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자극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로 미량의 화학물질로도 불편함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생리대 건강영향 조사 결과 발표는 조사 착수 뒤 4년10개월 만이다.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 조사는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파동이 있고 나서 시민들의 청원을 통해 시작됐다. 2017년 12월 조사를 위해 민·관공동협의회가 꾸려졌고, 1·2차 조사가 2018년 1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진행됐다. 환경부·식약처 등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결과를 민관협의회 회의에서 2021년 4월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식약처는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발표를 미뤄왔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대표는 “생리대 유해성 조사를 요구한 지 무려 5년 만에 결과가 발표되었다. 연구가 종료되고 2년 가까이 정보를 숨기고 발표를 미룬 것은 식약처와 환경부의 업무태만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회용 생리대 사용과 부작용 사이의 통계적 상관성이 확인된 만큼 중장기 여성건강대책 등을 수립하여 여성들이 안심하고 월경 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책임 있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제시한 증상들은 사용자의 설문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며, 실질적으로 질병 발생 및 건강 이상 등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일회용 생리대 사용과 건강 피해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추적연구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은미 의원은 “이런 태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때와 똑같다. 식약처는 민관협의회 결과 및 결과 보고서 결론대로 하루빨리 생리대 노출·독성평가를 착수해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와 식약처는 이날 공동보도자료를 내어 “초기 단계 연구인 만큼, 환경부와 식약처는 함께 추가 연구 검토 등 필요한 조치사항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