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대교 난간에 자살방지를 위한 문구, ‘누군가 내 곁에 있어'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중학생 ㄱ양(15살)은 지난 8월 자살을 시도했다. 아버지의 실직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어머니가 가출한 뒤 삶의 의지를 잃었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곳에서 만난 사회복지사의 따뜻한 관심, 퇴원 이후에도 이어진 무료 상담 서비스 덕분에 지금은 다시 희망을 지피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대표적인 자살예방사업인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병원의 응급실에 자살시도자가 실려 오면 응급의학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먼저 진단과 치료를 한다. 이후 사례관리팀이란 이름의 사회복지사가 4차례가량 대면 및 전화 상담을 한 뒤,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속해서 살핀다. 자살시도자는 일반인에 견줘 자살위험이 20~30배 이상 높을 정도로 고위험군이어서 사후관리와 상담이 아주 중요하다.
이 사업은 2013년 25개 병원에서 처음 시행한 이래 2022년 7월 현재 전국 79곳에서 시행 중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보도자료를 내어 “사후관리를 진행할수록 자살 및 정신건강 관련 지표가 모두 호전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성과를 자평하기에는 전반적으로는 실적이 저조하고,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고려하면 수행기관이나 인력 등 모든 면에서 너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이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자살시도자 수(사망자와 타 병원으로 옮김 제외)는 2016년 8057명에서 2018년 1만6536명으로 해마다 증가해 2021년에는 2만3970명으로 증가했다. 2022년의 경우에는 9월 현재 이미 1만9578명에 이른다.
이에 대응해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서비스 수행기관도 시행 첫해 이후 해마다 늘었다. 2016년 27곳에서 2018년 42곳, 2021년에는 77곳으로 지속해서 확대됐다. ‘사례관리자’로 지칭되는 상담인력도 2016년 54명에서 2018년 106명, 2021년 198명으로 증가했다.
사업 참여 병원과 인력 등에서 확충이 있었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2021년도 회계연도 결산 보건복지위원회 분석’에서 이 사업의 실적이 “다소 저조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허아름 예정처 분석관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을 분석해보니, 사례관리서비스 수행률이 평균 62%로 다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서비스 수행률은 2016년 47.2%에서 2017년에서 2019년 3년간 60.7%로 올랐으나, 2020년 63.6%, 2021년 67.3%로 여전히 60%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료: 보건복지부(2022)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소윤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응급실이 정상 운영하기 어려워 사업기관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서비스 수행률이 낮은 데는 자살시도자가 서비스를 받는 데 동의를 하지 않은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살시도자가 서비스를 받겠다고 동의한 비율은 2016년 55.4%에서 2020년 59.7%로 줄곧 50%대에 머물렀다. 그나마 2021년 63.6%로 높아졌으나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또 4회 서비스를 완료하기 전에 마음을 바꾸거나 자살을 재시도하는 서비스 중도탈락률도 30%대에 이른다. 2020년 36.4%이던 중도탈락률은 2021년 32.7%로 약간 떨어졌으나 2022년 7월 기준 현재 다시 41.5%로 올랐다.
복지부는 사업 참여 병원을 늘리고, 서비스 수행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우선 내년부터 5억원의 예산을 마련해 내원한 자살시도자 가운데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최대 10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 사례관리자가 24시간 상주하는 병원도 현재 10곳에서 내년엔 19곳으로 늘리는 한편, 현재 3년 단위인 이 사업 수행 기간을 5년으로 늘려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사례관리팀의 송선희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아산병원 응급실의 경우, 거의 매일 하루에 1명 이상의 자살시도자가 내원하고 인근 병원에는 한해 800명이 내원하는 상황”이라면서 “자살시도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이 사업을 하는 병원을 더 많이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은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예산과 인력으로는 근본적으로 사업 체감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면서 “의료비 지원의 대폭 증액 등 더 큰 지원과 함께 무엇보다 사업수행 병원과 상담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016년 25.6명에서 2017년 24.3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2021년 말 현재 지난해 대비 1.2% 증가한 26.0명으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부동의 1위다.
한편, 예정처는 복지부의 또다른 대표적 자살예방사업인 ‘자살예방전화 상담사업’에 대해서도 “상담사의 지속적인 미충원과 퇴사로 인해 (상담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인력 운용이 불안하고 업무가 연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2년 9월 현재 자살예방상담전화 상담사 정원은 80명이나 실제 상담 수행 인원은 56명에 불과하다. 충원율이 67.5% 그친다. 올 6월 상담 수행 인원이 56명(충원율 70%)이었는데, 그 사이에 2명이 또 퇴사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으로 인해 생명과 직결되는 자살예방상담전화의 응대가 제때에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담전화는 2018년 월평균 762건으로 시작해 2022년(9월까지) 월평균 1만4649건에 이를 정도로 해마다 늘고 있지만, 2022년 9월 현재 응대율은 60.3%에 그친다. 전체의 39.7%인 5417건의 급박한 상담전화에 응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업무가 매우 어렵고, 경력 요건을 충족하는 인력이 많지 않아 인력 충원에 어려움이 많은데다, 코로나 19 이후에는 상담 건수가 급증한 것이 응대율을 떨어뜨렸다고 해명했다. 복지부는 상담사의 자격 수당 인상 등 처우개선을 통해 인력 충원율을 더 높여 상담 응대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