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도피 범죄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정지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형사재판시효(기소 뒤 판결 확정 없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 완성으로 간주하는 것)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1997년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면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면소는 공소시효 완성 등 실체적 소송요건이 결여된 경우 유·무죄 판단 없이 소송을 종결한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ㄱ씨는 1995년께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여 5억6천여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그해 11월 1회 공판기일 후 미국으로 출국했고, ㄱ씨에 대한 소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판이 멈췄다.
이에 1심 법원은 ㄱ씨의 재판시효가 지난 2020년 3월 ㄱ씨 없이 공판기일을 열어 면소 판결을 했다. ㄱ씨에게 적용된 개정 전 형사소송법 249조 2항 ‘확정판결 없이 공소제기 때로부터 15년(현행은 2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본다’에 따라 ㄱ씨에게 공소시효 완성에 따른 면소로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형사소송법 253조 3항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 중인 사건에도 이 조항을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취지다.
2심과 대법원 모두 ㄱ씨에 대한 면소 판결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외도피로 인한 공소시효 정지 규정은 형사소송법 249조 1항에 적용되고, 재판시효인 2항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249조 1항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25년,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같이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되는 공소시효를 규정한 조항이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253조 3항의 입법 취지는 범인이 국외 체류를 도피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 진행을 저지해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는 기존 판례를 들며 “공소제기 때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다고 간주한 형사소송법 249조 2항의 시효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현복 대법원 공보연구관은 “국외도피로 인한 공소시효정지 규정이 재판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첫 번째 사례다. 형사법 영역에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방향으로의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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