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따른 범죄수익 몰수는 기소된 범행에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몰수를 명령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보이스피싱 조직 현금수거책인 ㄱ씨는 지난해 10월 피해자 ㄴ씨로부터 현금을 수거한 공범을 통해 1억9600만원을 전달받아 다른 조직원에게 건네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며칠 뒤 경찰은 ㄱ씨를 체포하고 ㄱ씨 집에 있던 현금 1억3630만원도 압수했지만, 이 돈이 ㄴ씨에게서 뜯어낸 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사는 공범과 함께 ㄴ씨의 돈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ㄱ씨를 재판에 넘겼고, 원심은 ㄱ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는 한편, 1억3630만원에 대한 몰수도 명령했다. 원심은 이 돈이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얻은 재산이고, “기소되지 않은 범행의 피해 재산인 경우에도 몰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ㄱ씨에 대한 징역형은 유지했으나 ‘기소된 범행에 대해서만 몰수가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로 몰수 부분은 파기했다. 대법원은 “일반 형법상 몰수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기소된 공소사실과 관련돼 있어야 하고, 기소되지 않은 별개의 범죄사실을 법원이 인정해 몰수나 추징을 선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판례를 들어 “부패재산몰수법에서 정한 몰수·추징의 원인이 되는 범죄사실은 기소된 범죄사실에 한정되고, ‘범죄피해재산’은 그 기소된 범죄사실 피해자로부터 취득한 재산 또는 그 재산의 보유·처분에 의하여 얻은 재산에 한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반 형법상 몰수에 관한 법리를 부패재산몰수법상 몰수·추징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쪽은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몰수·추징에 대해서도 기소되지 않은 범죄피해재산은 몰수·추징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최초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은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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