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정방송 파업은 정당”…‘김재철 퇴진’ 쟁의 MBC 노조 무죄

170일만에 파업을 잠정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한 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2012년 7월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방송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했던 <문화방송>(MBC) 노동조합 집행부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10년여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공정방송을 위해 근로조건과 시스템을 개선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파업이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6일 업무방해, 재물손괴,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침해 등 혐의로 기소된 정영하 전 <문화방송> 노조위원장 등 4명에게 재물손괴 혐의만 인정해 벌금 50만∼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상고심 심리가 진행되던 2019년 8월 복막암으로 별세한 이용마 전 기자에 대한 공소는 기각했다.

<문화방송> 노조는 2012년 1월30일부터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보도 사수’를 내걸고 170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정 전 위원장 등 5명은 파업 기간 동안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사옥 로비 등에서 집회를 열어 임원들을 상대로 “물러가라”고 외치거나, 사옥 1층 현관 출입문을 잠그고 대자보를 붙였다. 출입문 현판이나 로비 기둥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장은 사퇴하라”는 글귀를 쓰고, 파업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김재철 당시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낭독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 전 위원장 등이 이같은 파업으로 <문화방송>의 업무를 방해했고, 김 전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읽은 것은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출입문 현판과 대리석 기둥에 글귀를 쓴 것은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했다.

1·2심은 파업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물손괴 혐의는 유죄로 보고, 벌금 50만~1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문화방송>이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하고 구성원들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해서 직원들의 근로환경, 근로조건을 악화시켰으므로 정 전 위원장 등은 그 시정을 구할 수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공정방송을 위한 단체협약의 이행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이다. 파업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하므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이같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현복 대법원 공보재판연구관은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은 방송사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서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최민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