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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치적 사건마다 피고인에 빌미…‘공소장 일본주의’ 뭐길래?

등록 2023-01-04 07:00수정 2023-01-04 07:5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새해 첫주 전국 각급 법원의 휴정기가 끝나고 진행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형사 재판에서 ‘공소장 일본주의’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소장에 판사에게 유죄의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혐의와 무관한 사실을 적어선 안 된다’는 형사소송 규칙으로, 정치인이나 고위 법관이 기소된 굵직한 재판마다 논란이 계속됐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주장은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이 주요하게 활용하는 재판 전략 중 하나인데, 검찰이 불필요한 내용을 공소장에 장황하게 적어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재판이 시작된 김 전 부원장 쪽은 이미 검찰의 공소장이 재판부에 선입견을 갖게 하기 위한 내용이라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김 전 부원장 쪽 변호인은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장이 20쪽인데 범죄사실인 한두쪽이고 나머지는 거의 전제 사실”이라며 “재판장이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김 부원장 기소 뒤 재판에 넘겨진 정 전 실장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혐의 재판은 오는 31일 열릴 예정인데, 33쪽에 이르는 정 전 실장의 공소장에도 대장동 개발사업 추진 경과 등 ‘배경사실’만 10쪽 넘게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찬가지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부가 다퉈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현행 형사소송규칙 118조 2항은 “공소장에는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선 안 된다”며 공소장 일본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1982년 형사소송규칙이 제정될 때부터 확립된 원칙으로, 재판부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경우 “공소제기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라며 공소기각으로 재판을 끝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안이 복잡하고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는 사건일수록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부가 종종 논란이 돼왔다. 다스 자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 쪽은 사건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이 상세히 기재된 공소장을 문제 삼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지적했으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법률 전문가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가 논란이 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경기지사 시절인 2019년 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에 한정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로 공소기각 판결이 확정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라는 지적을 법원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준사법기관으로 불리는 검찰이 재판에 넘긴 사안에서 ‘공소장에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이유만으로 공소기각 결정을 하기란 재판부 입장에서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요 사건 변호인들은 검찰이 낸 공소장에 대해 재판부가 한번쯤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한다고 한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과거 공안 사건에서 조직의 연혁과 비밀스러운 활동 내역 등을 설명하기 위해 피고인의 일대기를 공소장에 적곤 했었는데, 최근 들어 특수부 검사들이 공범 관계를 암시하듯 혐의에 이르는 과정과 개입된 인물들의 관계를 과장되게 묘사하는 일이 많다”며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처음 접하는 재판부가 공소장 전제사실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도록 견제를 해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 형사부 판사는 “주요 사건 공소장이 불필요하게 긴 건 사실이다. 다만 이를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라며 공소기각하긴 어렵고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는 편”이라며 “공소장의 모든 내용을 반박해야 하는 피고인 입장에서 공소장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 경우,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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