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증용 드론을 날리고 있는 이장형 부장판사. 이 부장판사 제공
경남에서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ㄱ씨는 2021년 11월 이웃 ㄴ씨에게 “토지 경계에 심은 나무의 가지를 무단으로 베었으니 11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ㄱ씨는 요양시설이 세워진 토지 경계에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삼았는데, 바로 옆 필지를 매입한 ㄴ씨가 나뭇가지를 베어내는 과정에 실랑이가 벌어진 탓이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창원지법 진주지원 이장형 부장판사는 드론을 띄워 토지 경계를 살핀 뒤 지난해 11월 “ㄴ씨는 ㄱ씨에게 10만8천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부장판사는 ㄴ씨가 자신의 땅 쪽으로 뻗은 가지만 일부 베어낸 터라 요양시설에서 봤을 때 풍경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양쪽이 항소하지 않아 1심으로 끝났다.
법관이 소송대상인 토지, 건물 등을 당사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확인하는 증거조사 방식을 현장검증이라고 부른다. 이 부장판사는 현장검증에 ‘진심’인 편이다. 이 부장판사는 어떻게 하면 현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사비 150만원을 들여 드론을 구매했다고 한다. 드론을 조종하기 위해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고 4종 드론 자격증도 땄다. 이 부장판사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지방의 중소 도시, 군 지역에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담장을 경계로 수십 년간 이웃으로 지내다가 측량을 해보니 내 땅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제법 많다”며 “실제 경계를 조망할 수 있는 드론 촬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오다 지난해 진주지원에서 민사단독 재판장을 맡게 되면서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땅에서 찍은 현장 사진(왼쪽)과 드론을 활용해 찍은 현장 사진(오른쪽). 이 부장판사 제공
이 부장판사가 꼽는 드론 현장검증의 가장 큰 장점은 시야를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현장검증은 재판부가 현장을 살펴보고 사진 찍어서 조서에 첨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사건 현장이 넓거나, 토지 경계를 다투는 사건 등에선 지상에서 찍은 사진 기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부장판사는 “현장을 다녀온 사람은 지상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감이 오지만, 해당 조서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급심 재판부는 코끼리 다리만 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드론을 이용하면 지형지물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도 살펴볼 수 있고, 하늘에서 찍으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첫 드론 현장검증 이후 지금까지 15차례 드론을 활용한 현장검증에 나섰다고 한다. 재판 대상인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접근조차 어려웠는데도, 드론 덕에 현장을 파악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법원 안팎에서는 현장검증이 보다 세심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 하급심 충실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회생법원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현장검증이 어려워지자 영상으로도 현장검증이 가능하도록 재판실무준칙을 변경했다.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행정자문회의도 지난해 10월 임시회의에서 “사실심 충실화를 위해 현장검증 등 제도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판사 입장에서도 기록만 읽는 것보다 직접 나가서 보는 게 낫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 소송당사자도 판결에 대해 보다 신뢰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적·물리적 제약이 있는 만큼 현장검증을 장려할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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