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추천 개입 의혹’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회의의 검증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대법원 쪽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의혹은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지난 8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글을 올리면서 불거졌다. 송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을 적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2020년 대법관후보추천위원장과 만남에서 들은 얘기를 전했다. 당시 추천위원장은 “(안희길) 인사총괄심의관이 자료를 가져오면서 모 언론사의 칼럼을 뽑아와 피천거 후보 중 특정 후보에 대해 ‘이 분을 눈여겨보실 만 합니다’란 취지의 말을 하고 갔다”고 송 부장판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송 부장판사는 이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대법원장의 부당한 제시권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후보추천위의 공식 검증기능을 사실상 형해화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대법관의 제청권까지 무분별하게 남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가 말한 ‘대법원장의 부당한 제시권’은 2018년 5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폐지한 대법원장의 후보 제시권을 뜻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2011년 7월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행사 시 대법원장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신설됐는데, 대법원장이 특정 심사대상자를 위원회에 추천할 수 있다는 후보 제시권 때문에 추천위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일곤 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을 내려놓는다는 차원에서 이를 스스로 폐지했다.
송 부장판사는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의 발언에 김 대법원장의 의중이 담긴 것이라 본다며 “대법원장은 스스로 공언한 제시권 폐지를 뒤집고 간접적이고 음성적이면서 교묘한 방식으로 위원장에게 제시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희길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은 같은 날 코트넷에 “통상적으로 위원장에게 인사총괄심의관이 심사자료 전달과 함께 제청절차 전반에 관해 설명한다. 위원장이 심사자료 전달과 함께 심사대상자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요청해 주요 내용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칼럼에 언급된 심사대상자들에 대한 위원장의 질문에 답변한 것으로 기억한다. 통상적인 업무였지만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해명했다.
송 부장판사는 댓글로 “위원장의 요청 여부를 떠나 피천거인에 대한 설명과 답변을 하는 것은 인사총괄심의관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의관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에 따라 심사, 의결에 영향을 미치는 언급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심의관이 ‘눈여겨볼 만하다’고 언급한 분은 3명이었고, 미리 추천결과를 유도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후보추천위가 3배수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1명을 제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공교롭게도 인사총괄심의관이 3명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전국 각급 법원 판사들의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 내부에서도 의견 표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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