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징집병들이 지난해 11월27일 중남부 옴스크 기차역에서 주둔지로 출발하는 열차에 오르려고 승강장을 걷고 있다. 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정부가 전쟁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인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1심 판결에 패소하고도 “난민인정심사 기회를 줄 수 없다”며 항소한 데 대해, 당사자와 시민사회에서 “심사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조처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이 과정에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는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난민신청을 한 안드레이, 드미트리(모두 가명)를 ‘난민심사에 회부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28일 항소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난민신청서를 냈는데, 법무부가 두 사람의 난민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심사에 회부하지 않겠다고 하자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이 지난달 14일 난민신청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법무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법무부는 “단순히 징집을 거부한 사정만으로는 난민인정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른 (불회부) 결정”이라고 불복 이유를 설명했다.
법무부가 근거 삼은 대법원 판례는 2008년 7월 강제징집을 피해서 한국에 온 콩고 출신 난민신청자 ㄱ씨를 난민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ㄱ씨는 콩고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교회의 청년회장으로 강제징집거부와 반전운동에 나섰고, 이로 인해 정부군에 체포됐다가 탈출한 뒤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대법원은 “단순히 강제징집을 거부한 사정만으로는 박해의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없으나, 징집 거부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때는 박해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며 ㄱ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법무부는 두 사람에 대해 ‘단순 징집 거부’를 했다고 보고 있지만, 1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안드레이가 러시아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특수부대 요원에게 체포됐던 전력이 있는 점, 드미트리가 러시아 내 소수민족으로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정치적 침략”이란 입장을 가진 점 등을 토대로 “징집 거부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거라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이종찬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징집을 거부한 행위 자체가 러시아 정부에 대한 정치적 의견을 갖고 반대한 것이고, 이들이 러시아로 돌아가면 박해받거나 징집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단순한 징집 거부’라며 심사조차 거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항소는 난민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온 정부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강제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출신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심사에 넘기는 것조차 인색한 상황이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난민인정율은 3.3%였으며 난민심사회부율은 57.0%였다. 난민신청자 10명 중 4명이 심사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셈이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는 “한국 정부는 러시아 금융제재에도 참여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간접지원도 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난민 인정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기존의 정책이 작동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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