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 후보자 등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인쇄물 살포를 전면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앞서 헌재는 같은 조항에서 금지한 벽보·인쇄물 배부, 광고·문서·도화의 첩부·게시를 금지한 내용에 대해서도 헌법 불합치 판단을 내리며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를 보였다.
헌재는 공직선거법 93조 1항의 ‘인쇄물 살포’ 부분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조항은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광고·벽보·사진·문서·인쇄물·녹화 테이프 등을 배부·살포·상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ㄱ씨는 제20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당시 윤석열 후보를 반대하는 인쇄물을 수백장 살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ㄱ씨는 해당 조항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헌재로 보냈다. 헌재는 ㄱ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즉각 무효화하면 법의 공백이 생길 수 있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의 형식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헌재는 2025년 5월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정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에 대해선 인쇄물을 살포해 정치적 표현을 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또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로 정해진 규제 기간에 대해서도 “이 같은 장기간의 규제 기간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합리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면서 “각종 선거가 순차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상시적으로 제한해 기본권의 제한 정도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미 공직선거법에 후보자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난이나 허위사실 적시를 통한 비방 등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앞서 헌재는 같은 조항에 대해 지난해 7월21일 ‘벽보 게시, 인쇄물 배부·게시’에 관한 부분, 지난해 7월31일 ‘광고, 문서·도화 첩부·게시’에 관한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앞선 두 번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2023년 7월31일을 입법시한으로 했기 때문에 2024년 4월10일 치르는 22대 총선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2022년 7월21일, 31일 헌재 결정과 같은 취지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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