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면 불안의 원인을 이해하고 낮추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뒤떨어지게 될 것 같다.”
만 45~64살 이하 중년층이 만 65~74살 노년층보다 ‘사회적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년의 시기는 인생의 황금기로 불리는 만큼 사회적 불안이 낮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현실에선 그 반대의 양상인 것이다. ‘사회적 불안’은 개인이 겪는 심리∙정서적 불안과 달리 ‘불평등과 불공정 등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사회구성원 다수가 겪는 기분이나 경험’을 가리킨다. 이 불안의 정도는 한 사회의 건강 여부를 살피는 중요한 척도다. 사회적 불안이 널리 퍼지면 공동체성이 약화하고 광신주의가 활개 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일 펴낸 연구보고서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를 작성한 이현주 박사 연구팀은 지난 2022년 8월4일부터 18일까지 만 45~64살 3575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불안에 관한 인식 조사를 벌였다. 온라인 방식으로 이뤄진 이 조사에서 연구팀은 1점(전혀 불안하지 않다)~5점(매우 불안하다) 척도로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라 여유 있는 삶을 누리기 어렵다” 등 22개의 설문을 통해 사회적 불안 정도를 물었다.
조사 결과, 응답을 한 만 45~64살 중년층은 사회적 불안의 정도가 평균 3.80점으로 나타났다. 이 박사팀은 30~64살까지를 중년층으로 분류하되 30~44살을 전기 중년, 45~64살을 후기 중년으로 구분해 조사했는데, ‘후기 중년층’의 사회적 불안이 보통(3.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 노년층의 조사(2021년)에선 이 수치가 평균 3.30점이었다. 중년층이 오히려 노년층보다 훨씬 불안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벌인 청년층의 사회적 불안 정도는 4.14점이었다. 후기 중년층을 다시 45~54살 그룹과 55~64살 두 그룹으로 세분해 본 조사에서는 45~54살 그룹(3.84점)이 55~64살 그룹(3.77점)보다 불안감이 좀 더 높았다. 2020년 이후 연속으로 이어온 이 박사팀의 연구조사를 종합하면, 사회적 불안의 정도는 조사 시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청∙중년층에서 가장 크고, 이어 45~64살의 후기 중년층, 그리고 65~74살 노년층 순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팀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목한 열쇳말은 불공정과 불신, 경쟁과 도태, 사건·사고다. 이에 △불공정과 정부 불신에 따른 불안 △경쟁과 도태에 따른 불안 △사건, 사고 불안에 관한 불안 정도를 분석해 보니 불공정과 정부 불신 불안이 5점 척도에서 평균 4점으로 집계돼 가장 높았다. 경쟁과 도태에 따른 불안 정도도 평균 3.72였다. 사건·사고 불안은 3.41점이었다. 이런 불안에 대한 인식은 남성(3.9점)보다 여성(4.1점)이 더 컸고, 농어촌(4.01점)이나 중소도시(4점)보다 대도시(4.04점) 지역에 사는 이들이 약간 더 높게 나타났다.
이 박사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후기 중년층은 외환위기, 카드대란, 금융위기, 세월호, 코로나19 등 사회문제와 부모 부양과 자녀양육 등 사회환경 변화, 표준적 은퇴과정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경험한 집단으로 이들 가운데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중년층은 이른 퇴직과 소득 단절, 노후 준비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이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우리 사회의 불안은 극빈층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따라서 △충분하고 포괄적인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정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방식과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사회적 불안을 낮추기 위해 누가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설문조사도 이뤄졌는데 전체 응답자의 37.5%가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치인 21.5%, 행정부 16.8%, 국민 개인 10.9%, 언론 8.9% 순이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