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공관이 국내 기업 토지를 침범해 발생한 피해를 복구해달라는 소송은 우리나라에서 재판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외교공관 토지 문제는 그 나라의 주권적 행위와 관련이 있어 ‘국가면제’ 대상이라고 원심은 봤지만, 이를 파기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국내 기업 ㄱ사가 몽골국을 상대로 낸 건물 철거 등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ㄱ사는 2015년 주한몽골대사관 바로 옆의 토지를 매수하면서 대사관 건물이 ㄱ사 소유 토지 일부를 침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경계를 침범한 건물을 철거하고 임대료만큼의 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침범된 토지가 ㄱ사의 소유임을 확인해달라고도 요구했다.
1·2심은 ㄱ사 패소로 판결했다. 2심은 주한몽골대사관이 토지를 이용하는 행위는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쳐 ‘주권적 활동’과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봤다.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서 면제한다’는 국제관습법 원칙을 근거로 내세웠다. 다만 ㄱ사에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반면 대법원은 ㄱ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은) 외국의 공관지역 점유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청구나 그에 근거한 판결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금전지급 청구가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도 없다”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노동자와 미국 간에 해고무효확인을 다퉜던 1998년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는데, 당시 대법원은 “국가의 사법적 행위까지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지는 원고의 청구 내용, 그에 근거한 승소 판결의 효력, 외교공관 또는 공관직무의 관련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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