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캔 납품업체의 거래에 총수 일가의 회사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수십억 원의 ‘일감 몰아주기’를 한 하이트진로 임원들이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일부 거래는 무죄로 인정돼 1심보다 형량이 다소 줄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3부(재판장 이훈재)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에게 징역 1년3월에 집행유예 2년을 23일 선고했다. 사회봉사 80시간도 명령했다. 함께 기소된 김인규 대표이사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김창규 전 상무는 1심과 같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하이트진로 법인에도 벌금 1억5천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맥주용 공캔 등의 납품업체인 삼광글라스와의 거래에 총수 일가 계열사인 서영이앤티를 끼워 넣는 방법으로 43억원가량의 일감을 몰아줬다. 서영이앤티는 생맥주 기기를 제조해 하이트진로에 납품하던 중소기업으로, 2007년 박문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당시 부사장이 인수했다. 1심 법원은 이런 ‘통행세' 방식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박 사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인규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년을, 김창규 상무에게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1심보다 형량이 가벼워진 이유는 일부 공소사실이 2심에서 무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맥주캔 제조용 알루미늄 코일 거래에서 박 사장과 김 대표이사가 부당한 지시를 한 건 맞지만, 범행을 공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하이트진로 2세인 박 사장이 서영이앤티를 통해 하이트진로를 지배하는 것으로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경영권 승계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범행”이라며 “공정거래법 위반을 인식하면서도 법적 규제를 회피하고 우회해 새로운 위법적인 거래 구조를 지속해서 모색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거래상 약자 지위인 삼광글라스가 계열사를 부당지원하도록 했다”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창의적인 기업활동, 소비자 보호,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공정거래법을 훼손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자백하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하이트진로의 경우 사후 과징금을 납부하고 리스크 관리 운영 시스템을 운영 및 사회 공헌 활동을 한 점 등을 종합”해 양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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