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21년 9월17일, 경주 황리단길을 방문해 십원빵을 먹는 모습. 경주십원빵 인스타그램 갈무리
경주의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은 ‘십원빵’이 디자인을 바꿔야 할 처지가 됐다. 한국은행이 영리 목적으로 화폐 도안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1일 “십원빵 제조업체와 지역 관광상품 판매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법한 범위로 디자인 변경 방안을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 십원빵 제조 업체가 화폐 도안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해 한국은행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같이 밝힌 것이다.
십원빵은 1966년부터 발행된 다보탑이 새겨진 10원 주화를 본뜬 빵으로 2019년 경주의 한 업체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유사 업체가 늘어나며 경주의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의 한 업체도 십원빵을 보고 ‘십엔빵’을 만들어 팔아 화제가 됐다.
2021년 9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가게를 찾아 시식해 화제가 되는 등 십원빵은 경주를 방문하는 이들이 한번쯤 찾는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은행은 2005년 제정된 ‘한국은행권 및 주화의 도안 이용기준’을 근거로 십원빵의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용기준’을 보면 “화폐 도안은 한국은행이 별도로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승인을 받아도 유효기간은 6개월이다. 해당 기준을 어길 경우 한국은행은 저작권법에 따라 민형사상 조처를 취할 수 있다.
시중에서 파는 ‘십원빵’. 판매업체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십원빵 업체들은 한국조폐공사가 2018년 공공누리(공공저작물 자유이용 허락 표시제도) 누리집에 10원 등 일부 주화의 도안을 올렸고 이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억울해 한다. 공공누리의 경우 저작물 출처 표시를 준수하면 상업적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해당 도안은 공공누리 누리집에서 삭제된 상태다.
경주 황리단길에서 십원빵을 제조·판매하고 있는 한 사장은 <한겨레>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 질의를 했고 ‘문제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1년 전부터 한국은행으로부터 디자인을 변경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들은 한국은행과의 협의를 통해 십원빵의 디자인을 바꾸기로 했다.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되 빵 안에 새겨져 있는 글자 등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십원빵 디자인을 바꾸기로 한 십원빵 업체 사장은 “요즘 아이들은 경주에 다보탑이 있는 것도 잘 모를 수 있다. 화폐가 점점 없어지는 시대에 화폐에 좀 친숙해지고, 경주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한국은행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십원빵 디자인 변경에 대해 한국은행은 “영리 목적의 무분별한 화폐 도안 오남용이 사회적으로 확산될 경우 위변조 심리 조장, 화폐의 품위 및 신뢰성 저하 등으로 국가의 근간인 화폐유통시스템이 교란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에서도 바람직한 화폐 도안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화폐 도안 이용기준을 법률 혹은 내부 기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 설명이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화폐 도안을 무단 이용한 업체에 대응을 해왔고, 대부분 업체들이 디자인을 바꿨다고 밝혔다. 앞서 화폐 도안을 활용한 방석, 속옷, 유흥업소 전단지 등이 유통된 바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