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고소인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피의자를 기소했다는 사유로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법원이 당시 기소됐던 피의자의 형량을 1년 감형했다. 법원은 검사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피의자의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공소 자체가 무효가 되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규홍)는 1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김희석(53)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앞선 징역 3년6월형을 파기하고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2008년 게임기 유통업체를 운영하다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자 회사 지분을 ㅎ사에 넘기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회사의 재무구조 등을 속인 혐의 등으로 ㅎ사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이 사건으로 지난 2010년 징역 3년6월형을 확정받았다. 이후 김씨는 자신을 기소한 김아무개 전 검사가 자신을 고소했던 ㅎ사 운영자 ㄴ씨로부터 기소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전 검사는 이 사건으로 지난 2012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김씨는 이후 자신의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2021년 10월 법원이 김씨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을 개시했다. 법원은 김 전 검사 사례가 ‘공소 제기 또는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가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증명된 때’라는 형사소송법의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씨 쪽은 재판 내내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 쪽은 “수사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있고 이에 기초해 기소가 이뤄졌으므로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범의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범의를 유발해 검거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므로 그에 따른 공소제기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를 들면서도 사안에 따라 공소 기각 여부는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수사 절차에 위법소지가 있다고 해도 공소 기각의 여부는 기소 사유가 정당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ㅎ사가 고소한 사실의 내용이나 피해 규모에 비춰봐서 기소하는 것이 마땅한 사안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검사가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예외없이 공소를 기각하면 실질적 진실규범을 통한 형벌권 실현이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목표이념에 반할 우려가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공소기각되지 않고, 법원에 기소한 내용에 따라 실제 판단을 하되 심리 판단 과정에서 검사의 뇌물 수수에 따라 수사가 편향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술 등의 신빙성을 신중하게 판단해 검사의 뇌물수수로 인한 피고인의 불이익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앞서 김 전 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재판부가 김 전 검사의 뇌물 수수 시점이 수사 종결 뒤였던 점을 근거로 “뇌물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사실도 언급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검사가 뇌물을 받은 점 등을 김씨의 양형 사유로 참작해 김씨의 형을 1년 감형했다. 김씨는 이미 지난 2012년 5월4일 만기 출소한 상태다. 김씨 쪽은 판결 선고 뒤 <한겨레>에 “대법원에 상고할지 여부는 더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 검사는 검찰이 뇌물 수수 혐의로 자신을 기소하기 전인 2011년 초, 징계를 받지 않고 변호사로 개업한 상태다.
통상 재심은 과거사 사건에서 고문 등 위법 수사가 있었다고 인정될 때 개시된다.
‘검사의 뇌물수수’ 사유로 재심이 개시된 사실은 지난 5월 <한겨레>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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