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형사과는 23일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며 수용자들을 감금하고 정신병 치료약을 수십알씩 장기간 강제적으로 먹여 6명을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 등)로 목사 정모 씨를 구속하고 정씨를 도운 수용자 5명을 불구속입건했다. 사진은 수용된 장애인 등이 생활한 방 내부. (서울=연합뉴스)
그곳엔 사랑도 은혜도 없었다
장애인에 성폭행·쇠사슬·정신병치료약 강제투여… 목사 구속
장애인에 성폭행·쇠사슬·정신병치료약 강제투여… 목사 구속
그곳에 사랑은 없다. 은혜도 없었다. 매일 나오는 밥은 인근 중학교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와 만든 비빔밥이다. 반항하는 이는 개줄에 묶이거나 신경 안정제까지 강제로 먹어야했다. 정아무개 목사(67·예수교장로회)는 ‘장애우, 오갈데 없는 자’들을 돌보겠다며 그곳을 ‘사랑의 기도원’이라 이름지었다. 그 사이 정 목사에게 대들었던 누군가는 중증 장애인이 치료용으로 먹는 양의 3배에 이르는 신경안정제를 먹고, 2~3일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3일 미신고 가건물에 장애인을 수용해놓고 때리거나 억지로 정신치료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여성 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상해치사 등) 등으로 사랑의 기도원 목사 정아무개(67)씨를 구속하고, 그를 도운 장애인, 노숙자 등 또 다른 수용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사랑의 기도원 전경
정아무개 목사 숙소 겸 상담실 내부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2002년 4월 경기 김포 하성면에 미신고 복지시설을 세운 뒤 지금까지 100여명의 장애인 등을 보호하면서 이같은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수용자이자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심장병으로 사선을 넘나들 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났는데 심장에서 악령이 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았다. 다짐했지, 내가 사는 두 번째 목숨은 온전히 봉사하는 삶에 바치겠다고.” 하지만 정씨의 ‘두 번째 삶’은 외려 통째 악령에게 헌납된 것일까. 그가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세가지가 넘는다. # 상해치사 정씨는 2003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 중구의 한 무료진료소에서 정신병 치료약을 조제해와 말을 잘 듣지 않은 장애인에게 강제 복용시켜 임아무개(24)씨 등 6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신병력이 있는 수용자를 직접 데리고가 진료소에서 조울증, 파킨슨병 치료제 등을 타오지만, 약은 그야말로 채찍으로 쓰인 셈이다. 말썽을 피우는 수용자, 대드는 장애인들은 하루에 20알씩, 최장 6개월까지 억지로 먹곤 잠들어야했다. 2003년 5월 결국 숨진 임씨 등 6명의 사인은 모두 약물 중독이나 심장마비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은 밝혔다.
정아무개 목사가 보관하고 있는 약품들
독방내부 장판 밑 바퀴벌레 등
# 중감금 정씨는 03년 2월부터 이런 운영 방식에 불만을 드러낸 장애인 이아무개(53)씨 등을 창문도 없는 1.5평 짜리 독방에 개줄로 묶은 채 가둬놓고 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경찰에게 분을 삭이며 말했다고 한다. “말 안들었다고 한 겨울에 난방도 안되는 독방에 절 4일 동안 가뒀습니다.” 힘겹게 말은 이어진다. “그전에 설교할 때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나는 하나님의 제자요, 내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다, 그래서 내 행동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요.”
피해자들을 감금하여 사망케 한 독방(왼쪽), 독방내부에 있는 대·소변용 플라스틱통(오른쪽)
잠겨진 방을 열고 있는 모습(왼쪽), 문 밖에 설치된 잠금장치(오른쪽)
# 성폭행 일부 여성 장애인은 정씨의 성적 노리개였다. 정씨는 특히 여성 장애인 3명을 방이나 모텔 등지에서 70여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정씨의 장애인 아들(42)과 결혼한 며느리 ㅇ아무개(33)씨도 있었다. 경찰은 “애초 수사 방향에 있어 성폭행까지 예상을 못했다”며 “그런데 며느리까지 포함될 줄은 만에라도 생각했겠느냐”고 말했다. 정씨는 직접 며느리를 데리고 가 임신을 방지하는 루프 삽입 시술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의 영장엔 이렇게 성폭행 혐의가 추가된다. 다음 행위들은 그래서 차라리 순진하고 평범해 보인다. 정씨가 수용자들에게 주입하거나 벽 등에 붙여둔 생활 규칙 가운데 하나. ’통장, 주민등록증 등은 모두 맡겨야 한다.’ 하나. ‘도망가도 금방 잡히게 된다.’ 또 하나? ’다른 이들과 성관계를 할 때는 목사 허락을 받아야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건 목사 명령이다’. 실제 정씨는 며느리 ㅇ씨 등 장애인 3명의 개인 정보를 사업자 등록용으로 유흥업소 사장에게 팔아 2500여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독방 내부(왼쪽), 불결한 주방 내부 모습(오른쪽)
정씨는 인터넷 방송의 종교전문채널에 자신을 봉사 성직자로 소개하는 홍보 동영상까지 전파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용자는 물론 거액의 후원금까지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용자에게 국가와 가족이 준 기초생활수급비, 생활비까지 정씨가 챙긴 돈은 4억8천여만원에 달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정씨가 “‘많은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고, 특히 04년 11월 홍보 방송 이후 많은 후원금이 모이면서 자신감과 동시에 부담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며 “모든 죄를 하느님께 회계하고, 맡기겠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 처음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사랑의 기도원에 자원 봉사를 나갔던 시민활동가가 경찰에게 “봉사를 나갈 때마다 지난번 돌봤던 사람들이 죽었다거나 사라진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장애인 ㅇ아무개씨가 울면서 “나 좀 구해달라”고 붙든 게 결정적이었다. 현재 피해 장애인들은 정식으로 인가받은 김포의 로뎀 장애인 요양소 등지로 옮겨져 요양을 받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권두섭 폭력계장은 “너무 소설 같은 이야기라서 처음엔 반신반의했을 정도”라며 “이번에 밝혀지지 않았으면 이런 생활이 얼마나 더 갔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현실 세계의 믿음과 욕망의 배반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렸던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신재인 감독)에서 고아원생에게 모든 식탐을 죄악이라고 가르치며 ‘슬림 경영’을 꾀했던 원장이 스쳐갔다. 정씨는 차라리 영화 속 주인공에 가깝다. 하지만 경찰은 “정씨가 인근 교계에선 꽤 명망있는 특수 목회자로 알려져 있었다”며 “후원금도 다른 교회의 신도들이 준 게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목사였고, 2남1녀를 둔 엄연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한겨레>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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