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출국금지…검사가 수사권 남용”
피고소인의 변호사가 수사 검사의 수사권 남용을 주장하며 검찰총장에게 직접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청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법무법인 케이알 소속 박혁묵 변호사는 “검사가 출국금지를 풀어주지 않아 의뢰인의 직장과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를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최근 대검찰청에 출국금지 해제 수사지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29일 밝혔다. 수사지휘권 발동 요청은 검찰총장이 개별 사건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한 것에 근거한 것으로 진정 사건의 효력을 갖는다.
박 변호사의 의뢰인인 정재용(43)씨는 외국 기업의 알마티(카자흐스탄) 지점장으로, 지난 1일 입국 뒤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정씨는 2001년부터 5년 동안 삼성전자 알마티 지점장으로 근무했는데, 회사에 1200만달러의 손해를 끼쳤다며 지난 2월 고소당했다.
박 변호사는 “고소액 1200만달러 가운데 1000만달러 가량은 전혀 손실이 아니라고 회사 쪽 변호사도 인정하고 있다”며 “피고소인의 혐의 사실이 입증이 안됐음에도 검사가 출국금지를 유지해 사업상 피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정씨가 출국 뒤 다시 귀국해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는 뜻으로 국내에 있는 부동산을 검찰에 신고했고 가족까지 입국시켰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특히 “검사의 요구로 변호사 명의의 ‘출석 및 출석보증 각서’까지 제출했다”며 “하지만, 검사는 그 자리에서 회사 쪽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보더니 출국금지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박준효)는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답변은 곤란하다”며 “정씨는 가정과 직장 등 생활기반이 외국에 있어 귀국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출국금지 해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회사 쪽에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은 것에 대해 “피고소인의 출국금지 해제인 만큼 피해자 쪽 의견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며 “법에 보장된 이의신청 절차를 놔둔 채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를 요청하는 변호사의 행동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정씨가 출국하면 도주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검찰에 출국금지를 풀어주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이의 신청 기간이 10일로 짧은데다 실효성도 없고, 출국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행정심판도 최소 3~4개월이 걸려 실효성이 없다”며 “다음주에는 법무부장관에게도 수사지휘 신청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18일 베이징 제2공장 착공식 참석을 이유로 정몽구 회장의 출금을 일시해제했고, 지난해 엑스파일 수사 때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출금을 풀어준 바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검찰은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18일 베이징 제2공장 착공식 참석을 이유로 정몽구 회장의 출금을 일시해제했고, 지난해 엑스파일 수사 때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출금을 풀어준 바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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