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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6 18:55 수정 : 2005.01.06 18:55


재혼않는 조건 재물받은 며느리
약속 어기자 "시댁에 반환"판결

법원도서관이 6일 번역해 공개한 일제 ‘고등법원판결록’ 1권에는 1909년부터 1912년까지의 판결문이 시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판결문 중에는 현재의 상식이나 기준에 비춰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으며, 정교한 사법적인 판단의 기준이 서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당시 민사 사건들 대부분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나 소유권 확인 등 복잡한 내용인데 비해 변호사가 있는 경우가 드물어, 법률을 통한 분쟁해결 행위가 소수에게만 집중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판결록에 있는 주요 판결들이다.

◇군자금 모금 활동 강도죄로 처벌= 김좌진 장군은 21살 때인 1911년 북간도 독립군 사관학교 설립에 필요한 군자금 조달을 위해 조카뻘이 되는 친척 김종근씨를 찾아갔다가 경찰에 잡혔다. 일제 고등법원은 2심인 경성공소원(항소법원)의 판결을 인용해 “피고인 김좌진은 안승구 등과 함께 김종근 집으로 들어가 재물을 강취할 것을 공모했다”고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김 장군이 김종근의 집 근처까지만 가고 실제 집에 들어가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 죄를 적용해 2년6월의 형을 확정했다. 이 판결에서 김 장군은 다른 피고인과 달리 변호사를 3명이나 뒀던 점이 특이하다.

◇자식 부양 의무는 아버지에게= 1912년 이아무개씨의 첩 김아무개씨는 이씨의 아이를 10살 때까지 키우고 있었다. 그 뒤 자식이 없던 이씨가 아이를 데리고 가자, 김씨는 “지금까지 아이를 기른 양육비를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아버지 이씨는 “김씨 집안에 있을 때까지는 어머니가 키우는 것이 책임이고,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부양의무를 반씩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아버지가 아이를 부양하는 의무는 조선의 관습”이라며 양육비 103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재혼 않는 조건으로 재물 주기도= 1911년 남편 사망 뒤 홀로된 신아무개씨는 시댁으로부터 “재혼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약속한 뒤 시댁에서 논밭과 집, 소 등을 받았다. 하지만 신씨는 그 뒤 김아무개씨와 결혼을 했고, 시댁 쪽에서는 약속을 어겼으므로 재물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신씨는 재판에서 “현재 사회상황은 남자나 여자나 재혼했다고 비난받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법원은 “사회 상황과 관계없이 스스로 재혼을 안하는 조건으로 법률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약속 위반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재산 반환 판결을 했다.


남편 치명상 입힌 이웃 찾아가
함께 때려죽인 처와 첩은 무죄

◇경황없는 상태에서 복수는 무죄= 1910년 이아무개씨는 김모씨의 집에서 말다툼을 하다 김씨에게 맞아 사망 직전의 혼수상태에 놓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의 처 홍아무개씨와 첩 엄아무개씨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김씨의 집으로 달려가 이씨의 몸을 덥히는 등 소생술을 썼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격분한 홍씨와 엄씨는 동네사람이 묶어놓은 김씨를 때려 살해한 뒤 자수했고, 살인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친족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가족이 이성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 흐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살해했다면, 사람의 감정에 비추어 죄를 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랫사람 거래 통한 분쟁 많아= 일제시대까지도 조선시대 양반은 부동산 거래 때 패지(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낸 문서)를 이용했다. 양반들은 자기 명의로 부동산을 파는 것을 꺼려 패지를 통해 하인이나 거간꾼에게 매매자를 수소문 했기 때문에, 이 패지의 법률적 성격을 둘러싸고 분쟁이 많았다. 유아무개씨는 양반가 백아무개씨의 종이 갖고 있던 패지를 보고 땅을 사겠다면서 패지를 받았지만, 갑자기 백씨가 땅을 팔겠다는 의사를 바꾸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패지는 종에게 매수인을 찾아보라는 명령일 뿐 법률적인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백씨의 손을 들어줬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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