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민씨
‘된장남’ 구수한 맘으로 농촌 살린다
담양군 갈전리 윤영민씨 노동운동가에서 유쾌한 ‘된장남’으로 진화했다가 올핸 마을 이장까지 맡았다. 24일 오전 전남 담양군 대덕면 갈전리 ‘우리콩 영농조합법인’에서 만난 윤영민(45) 전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은 주민 5명과 무쇠 솥 5개를 걸어 나무로 불을 때 콩을 삶고 있었다. 윤씨는 공장 안 수백개의 메주덩어리를 가르키며, “마을에 행복을 가져다 줄 복 덩어리다”며 웃었다. 윤씨는 2002년 10월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로 귀농했다. 그는 “5월의 꿈인 대동세상을 만들 형식적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고 했다. 건강이 축난데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 마음앓이를 하던 그는 농촌에서 나누며 사는 작은 공동체를 실험하고 싶었다. 화순 출신인 그는 먼저 귀향한 친구 오봉남(45)씨의 고향이자, 동갑내기 최순필(45·축산업)·송정기(45·도예가)씨가 살던 운산리로 들어갔다. 1984년 11월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돼 용접공으로 시작해 노동운동에 투신한 지 18년 만의 일이었다. 노동운동 하다 5년 전 귀농…‘공동체살이’
먼저 귀향한 친구들과 우리콩 심기 시작
친환경 된장 판매로 희망 불 지핀다 윤씨와 오씨 등 5명은 10㏊의 밭에 콩을 심었고, 우리콩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10년 전 귀농한 한상원씨와 환경운동가 한성국(44)씨가 힘을 보탰다. 윤씨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발효의 전통과 정성이 담긴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운산·갈전리는 기온 차가 커 콩 알곡이 튼실한데다, 화순 동복댐 상류로 물이 맑아 된장을 담기에 적지다. 소금은 멀리 신안 임자도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나승렬씨 등 6명의 교사 가족이 운산리 인근 갈전리로 이사했다. 윤씨는 운산·갈전리에 사는 교사와 문화예술인등 10여 명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윤씨는 지난 22일부터 ‘놀자! 놀자! 신나게 노~올자!’라는 자연체험학교를 열었다. 마을 아이들이 연을 만들어 띄우고, 달집을 태우면서 신나게 놀도록 했다. 윤씨는 “농촌에서 살기가 교육·문화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데, 회원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면 ‘참교육’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올해 41가구가 사는 운산리 마을 이장이 됐다. 윤씨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고 했다. 윤씨는 “운산리를 ‘행복마을’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이다”며 “마을의 경제적 토대를 탄탄히하고, 옛 전통 문화를 살려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담양/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수당 모아 ‘동네 땅’ 산 탑동마을 살림꾼
해남군 청신리 전재섭씨
농촌마을 60대 이장이 7년 동안 모은 수당으로 주민 공동 명의의 동답을 구입해 동네 안팎 대소사를 꾸리는 알뜰한 살림살이를 펼치고 있다.
올 들어 11년째 이장을 맡은 전남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 탑동마을 전재섭(67)씨는 24일 “동답을 마련한 이후 연초 마을총회의 분위기가 한결 화기애애해졌다”며 “이제 안정적으로 공동경비를 마련할 수 있으니 이장일도 젊은 사람한테 넘겨야 하겠다”고 말했다.
공동경비 분담문제에 마을 분위기 서먹
7년 꼬박 모아 논 1200평 마련해 해결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다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전씨는 7000여평의 벼농사를 짓는 중농이다. 이장을 처음 맡은 1997년 마을총회가 공동경비를 분담하는 안건을 둘러싸고 서먹해지자 주민의 화목을 해치는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때부터 다달이 10만원씩 나오는 이장수당을 꼬박꼬박 모으기 시작했다. 전씨는 마침내 2003년 12월 7년 동안 모은 수당 1000만원과 출향인사 20여명이 보탠 희사금 1000만원 등 2000만원으로 논 1200평을 사들였다. 구입 뒤에는 마을 주민 32가구 64명을 대표한 이장·개발위원장·노인회장·부녀회장·새마을협의회장 등 6명의 공동 명의로 등기를 마쳐 동답으로 만들었다. 해마다 이를 빌려주고 받은 임대료는 한해 평균 200여만원씩 들어가는 마을 공동경비로 쓴다. 전씨는 “마을을 운영하다 보면 진입로에 자란 잡풀을 베거나 정자나무 아래 평상을 들이는 등 이런저런 돈이 든다”며 “동답을 마련한 뒤에는 이웃돕기 성금, 적십자 회비, 면행사 분담금도 거뜬이 해결한다”고 덧붙였다. 이웃의 부담을 덜어 즐겁다는 전씨는 “이제는 이장수당으로 막걸리도 마시고 교통비도 쓴다”며 “앞으로 탑동마을의 상징인 ‘5층 석탑’의 훼손부분을 복원하고, 주민의 70%인 노인층의 복지를 챙기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해남군청 제공
담양군 갈전리 윤영민씨 노동운동가에서 유쾌한 ‘된장남’으로 진화했다가 올핸 마을 이장까지 맡았다. 24일 오전 전남 담양군 대덕면 갈전리 ‘우리콩 영농조합법인’에서 만난 윤영민(45) 전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은 주민 5명과 무쇠 솥 5개를 걸어 나무로 불을 때 콩을 삶고 있었다. 윤씨는 공장 안 수백개의 메주덩어리를 가르키며, “마을에 행복을 가져다 줄 복 덩어리다”며 웃었다. 윤씨는 2002년 10월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로 귀농했다. 그는 “5월의 꿈인 대동세상을 만들 형식적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고 했다. 건강이 축난데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 마음앓이를 하던 그는 농촌에서 나누며 사는 작은 공동체를 실험하고 싶었다. 화순 출신인 그는 먼저 귀향한 친구 오봉남(45)씨의 고향이자, 동갑내기 최순필(45·축산업)·송정기(45·도예가)씨가 살던 운산리로 들어갔다. 1984년 11월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돼 용접공으로 시작해 노동운동에 투신한 지 18년 만의 일이었다. 노동운동 하다 5년 전 귀농…‘공동체살이’
먼저 귀향한 친구들과 우리콩 심기 시작
친환경 된장 판매로 희망 불 지핀다 윤씨와 오씨 등 5명은 10㏊의 밭에 콩을 심었고, 우리콩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10년 전 귀농한 한상원씨와 환경운동가 한성국(44)씨가 힘을 보탰다. 윤씨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발효의 전통과 정성이 담긴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운산·갈전리는 기온 차가 커 콩 알곡이 튼실한데다, 화순 동복댐 상류로 물이 맑아 된장을 담기에 적지다. 소금은 멀리 신안 임자도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나승렬씨 등 6명의 교사 가족이 운산리 인근 갈전리로 이사했다. 윤씨는 운산·갈전리에 사는 교사와 문화예술인등 10여 명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윤씨는 지난 22일부터 ‘놀자! 놀자! 신나게 노~올자!’라는 자연체험학교를 열었다. 마을 아이들이 연을 만들어 띄우고, 달집을 태우면서 신나게 놀도록 했다. 윤씨는 “농촌에서 살기가 교육·문화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데, 회원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면 ‘참교육’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올해 41가구가 사는 운산리 마을 이장이 됐다. 윤씨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고 했다. 윤씨는 “운산리를 ‘행복마을’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이다”며 “마을의 경제적 토대를 탄탄히하고, 옛 전통 문화를 살려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담양/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수당 모아 ‘동네 땅’ 산 탑동마을 살림꾼
해남군 청신리 전재섭씨
전재섭씨
7년 꼬박 모아 논 1200평 마련해 해결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다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전씨는 7000여평의 벼농사를 짓는 중농이다. 이장을 처음 맡은 1997년 마을총회가 공동경비를 분담하는 안건을 둘러싸고 서먹해지자 주민의 화목을 해치는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때부터 다달이 10만원씩 나오는 이장수당을 꼬박꼬박 모으기 시작했다. 전씨는 마침내 2003년 12월 7년 동안 모은 수당 1000만원과 출향인사 20여명이 보탠 희사금 1000만원 등 2000만원으로 논 1200평을 사들였다. 구입 뒤에는 마을 주민 32가구 64명을 대표한 이장·개발위원장·노인회장·부녀회장·새마을협의회장 등 6명의 공동 명의로 등기를 마쳐 동답으로 만들었다. 해마다 이를 빌려주고 받은 임대료는 한해 평균 200여만원씩 들어가는 마을 공동경비로 쓴다. 전씨는 “마을을 운영하다 보면 진입로에 자란 잡풀을 베거나 정자나무 아래 평상을 들이는 등 이런저런 돈이 든다”며 “동답을 마련한 뒤에는 이웃돕기 성금, 적십자 회비, 면행사 분담금도 거뜬이 해결한다”고 덧붙였다. 이웃의 부담을 덜어 즐겁다는 전씨는 “이제는 이장수당으로 막걸리도 마시고 교통비도 쓴다”며 “앞으로 탑동마을의 상징인 ‘5층 석탑’의 훼손부분을 복원하고, 주민의 70%인 노인층의 복지를 챙기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해남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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