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31일 오후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 실명이 포함된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중구 필동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에서 한 관계자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이강국 헌재소장 “기억 없지만 사실이라면 죄송”
진실화해위원회가 30일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와 함께 판사 이름을 공개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공식 견해를 밝히면서도 내심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강국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3명이 명단에 포함된 헌법재판소의 지성수 공보관 역시 “아무런 공식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이 헌재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긴급조치 사건을 판결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국민들께 대단히 죄송하다”며 “법관으로서 평생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은 이날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대법원의 공식 입장은 없다”며 “대법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반성과 무관하게 군사독재 시절의 판결에 대한 수집·검토 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선 법원에서는 현직 대법관들이 명단에 포함된 것을 의식한 듯 반응을 자제했으나, 명단 공개에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판사들도 있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명단 공개를 시비 삼아 법원의 과거사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긴급조치 판결에 참가한 판사가 배석판사이므로 책임이 적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주심이든 배석이든 판사는 자기 이름이 들어간 판결문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30일 <한겨레>에 실명이 공개된 대법관들은 출근길에 기자들이 실명 공개에 대한 견해를 묻자 대부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대법관은 손사래를 치며 “노 코멘트”라고만 말했고, 또다른 대법관은 기자들을 피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출근했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집무실로 향했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과 2006년 대법관 후보 제청 때 몇몇 후보자의 긴급조치 위반 판결 전력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이날 “당시 후보자들의 민·형사 판결문을 전부 검토했고 이 과정에서 몇몇 후보자들이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했음을 알았다”며 “그러나 이 대법원장이 ‘그런 이유로 인적 청산을 하면 안 된다’며 제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사법부는 즉시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설치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이해를 대변했던 잘못을 바로잡고 진심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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