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취임 이후 잇단 친기업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말 때문에 법무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재계의 견해를 반영하는 쪽으로 수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 장관은 지난 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한 법무정책 방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법이 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법 제도를 개선하겠다”, “불법파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등 친기업적인 발언을 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고, 지난해 12월 기자 간담회에서는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면 관용을 베풀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장관의 이런 발언을 두고 경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법무부가 지나치게 기업 편을 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전임 천정배 장관이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마련한 상법 개정안이 변질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모회사가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에서 위법행위가 있으면 모회사의 주식 1% 이상을 소유한 주주가 자회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낼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제’ △회사의 이사가 장래 또는 현재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 △집행임원제 등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전경련 등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지난해 12월 재계·시민단체·학계 인사가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3가지 쟁점을 재검토해 왔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재계가 반대하는 세 가지 사항 만을 재검토하는 위원회를 구성한 것 자체가 편향적”이라며 “분식회계 기업의 형사처벌 면제, 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 차단 등 김성호 장관이 한 일련의 발언은 균형감을 잃고 있고, 상법 개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김준규 법무실장은 “일부 언론이 법무장관의 발언 가운데 앞뒤 맥락을 잘라 입맛대로 해석하고 보도해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장관은 원론적인 얘기를 했고, 상법 개정안의 쟁점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 전 장관 때 상법 개정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재계가 소송 남발의 우려 등을 내세워 이중대표소송제에 반대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 장관이 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을 막겠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상법 개정안이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쪽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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