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의원
[배심제지지 릴레이편지3] 심희기 연세대 법학부 교수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의 세 번째입니다.
존경하는 이주영 의원님!
공청회 진술인으로 몇 번 뵌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인연을 핑계 삼아 감히 편하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심슨 사건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이나 일반 국민들은 유죄평결을 예상하였는데 무죄평결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영미법 국가 안에서 배심제의 폐단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배심제가 지고지순한 형사사법제도가 아니라는 논란들이 제기되고 있다. 배심폐지론이 나오고 있는데 뒤늦게 이것을 하겠다는 것은 혹시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취지의 지적[2006년 9월 1일 법사위 제1소위 회의록(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안)]을 하셨습니다.
심슨 사건에 대한 평가는 미국 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고 향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므로 짧은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드릴 터이니 법안을 심사하시는데 참고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죄평결이 난 이유 배심원들은 왜 무죄평결을 내렸을까요? 변론이 종결된 후 배심평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또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습니다. “배심원은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무죄평결을 하여야 합니다.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란 모든 증거에 대한 검토를 마친 후에 기소된 사실에 대하여 ‘단연코 유죄’라고 느낄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한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는 무정추정의 법리가 명시되어 있어 우리 대법원도 이미 1960년대 초반에 ‘유죄로 가정할 때 합리적 의심이 생기면 법관은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도입하여 실무에서 응용하고 있고 모든 형사소송법 교과서에도 이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심슨 사건의 배심원 평결에 영향을 준 이또 판사의 또 하나의 설시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증인이 중요사항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위증한 것으로 판단되면 그 증인의 증언 모두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9개월 동안 진행된 변론과정에서 검찰 측 증인들은 하나같이 의심스런 증언들을 거듭하였고 수사관 중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은 중요사항에 대하여 배심원으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수사관은 나중에 위증죄로 기소되어 형사처벌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수사관들은 매우 허점이 많은 수사를 한 것이며 과학수사연구소의 샘플보관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은 백인 수사관들이 흑인피의자를 유죄로 간주하고 ‘일부의 증거는 조작해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수사와 증거수집에 임한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유능한 변호인들이 조금도 실수 없이 검찰 측 증거의 신빙성을 완벽하게 탄핵한 것도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이또 판사의 설시 중에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공판중심주의(배심원은 이 법정에서 제출된 증거 만에 의거하여 심리하십시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이또 판사의 설시는 미국의 모든 판사가 설시하는 보편적인 내용에 속하는 것입니다. 평의시작 3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한 배심원은 “우리들의 평결이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유죄평결’을 하느니 차라리 ‘잘못된 무죄평결’을 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배심원들은 이또 판사의 지도에 충실히 따른 것이고 그 결과 배심원들은 무죄평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심슨 평결이 잘못이라면 그 잘못은 경찰, 과학수사연구소, 검찰의 몫이 훨씬 크고 배심원의 몫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할까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심슨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직업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판 심슨사건’으로 불린 치과의사모녀 피살사건입니다. 그 사건의 항소심은 사형을 선고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원용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사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판결을 받았지만 제2차 항소심은 유럽의 법의학자가 항소심 공판정에서 증언하도록 허용하는 초유의 선례를 남기며 또다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원용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사가 다시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인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치과의사모녀 피살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의 판단을 두고 오판시비를 벌이는 것은 피고인에게 가혹한 일입니다. 심슨이 유죄평결을 받아야 하는데 무죄평결이 났으니 배심제가 문제 있다고 논평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일 수 있지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신봉하여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열 사람의 유죄자를 풀어주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의 억울한 피고인을 감옥에 가두어서는 안된다’는 법리를 옹호하여야 할 줄로 압니다. 심슨재판을 오판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공판중심주의와 위법수집증거배제 법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와 위법수집증거배제 법리를 무시하면 다른 측면의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배심원의 오판가능성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직업법관의 오판가능성은 왜 문제삼지 않는가 하는 반론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습니다. 법관들로 하여금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게 하고 일반인으로부터 무작위추출한 배심원으로 하여금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게 하고 그 결과를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신뢰할 만한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비스 인프라가 취약하면 직업법관이나 배심원이나 정확한 재판을 하기 어려운 것은 매일반입니다. 심슨사건을 계기로 배심제의 폐단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배심폐지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런 논의는 패러디나 개탄의 수준에 그치고 있고 입법적 움직임으로 연결된 사례는 전무합니다. 심슨사건에 대한 수많은 논평 중 수사관들의 불법행위(증거의 조작과 위증, 인종적 편견)가 재판을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논평이 가장 많습니다. 검찰 측의 실수와 무성의가 무죄평결을 유도하였다는 논평이 두 번째로 많습니다. 400만 불이 넘는 고액으로 11명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 심슨은 돈으로 무죄평결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평이 세 번째로 많습니다. 배심원 12명 중 8명이 흑인이므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하였다는 논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인 대표배심원이 울음을 터트리며 “증거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종적 편견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토양론과 풍토론 의원님의 의견 중에 배심제는 ‘우리나라의 사법토양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배심제는 우리나라의 사법토양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하지 아니한 열린 생각에 경의를 표합니다. 1895년-1897년 사이에 순한글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였던 서재필 선생이 생각납니다. 서재필은 열강이 각축하는 환경에서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려면 부국강병을 꾀하여야 하는데 그 첩경은 의회를 만들어 국사를 논의하고 서구식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런 주장이 황권을 위협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자 서재필은 국민주권주의를 수정하여 군주주권론으로 변경하였고 독립협회 활동으로 민주역량이 함양된 개명 엘리트가 참여하는 의회(중추원) 구성을 구상하였습니다. 서재필이 서구식 국민주권론을 군주주권론으로 변경한 것은 그에게 1890년대 후반의 조선의 풍토는 국민주권을 시행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서재필의 ‘개명된 군주주권론’조차 위험하게 생각하여 그를 추방하였습니다. 그 후 고종과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재의 참여법률안은 미국식 배심제와 비교하면 배심원의 오판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한 법안입니다. 그것은 비유하여 말하면 서재필의 군주주권론과 유사한 법안입니다. 그렇듯 국민의 능력을 의심하고 오판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법안을 앞에 두고 직업법률가들은 한층 더 국민의 능력을 의심하고 오판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현재 부국강병한 나라(예를 들어 G8국가를 들어 봅시다) 중에 배심제나 참심제를 도입하지 아니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대한민국도 무역규모 12위의 큰 나라입니다. 의원님을 비롯한 개명된 지도자들의 현명한 지도력 덕택으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룩하여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유신정권이나 신군부 정권은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구실로 대통령직선제는 대한민국의 풍토에 맞지 않는다면서 체육관 대통령시대로 후진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이 200년 이상 전에 시작한 배심제를 21세기의 한국인들이 소화할 능력이 없다거나 민도가 낮다거나 하는 식으로 매도한다면 향후 언제쯤이 적당한 시기가 될까요? 토양이나 풍토를 거론하는 논증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대한제국 위정자의 어두운 국제정세파악과 유사한 정세파악이 아닐까요? 또 토양이나 풍토를 거론하는 논증을 존중하여 제1단계 국민참여법률안에서는 극히 소수의 중죄사건에 한하여 피고인에게 배심재판을 선택하는 권리를 주었고 배심평결은 직업법관이 뒤집을 수 있습니다.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하여 1일 평결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수많은 모의재판을 수행하여 점검하였습니다. 국민은 이제 ‘사법의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의원님의 지적 중 ‘국민들의 사법서비스에 대한 변화 욕구’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민참여법률안은 이미 그런 차원을 넘어선 국민의 요구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입법에도 참여하고 행정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왜 사법에는 참여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제 ‘사법의 객체’가 아니라 ‘사법의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고 아무리 ‘사법서비스를 개선하라’고 요구하여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도달한 결론이 사법참여입니다. 심슨사건에서 한국인이 주목해야 할 것은 ‘배심제의 폐단’이 아니라 미극 사법제도의 개방성과 투명성입니다. 심슨재판은 라디오와 티브이로 생중계되어 미국인들의 법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습니다. 심슨재판은 세계인들에게 미국사법제도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여지없이 과시한 재판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번도 재판과정이 생생하게 중계된 적이 없습니다. 지금 국회방송이 있어서 의원님들의 법안심의과정은 투명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폭행 사건을 제외하고 국민이 관심을 갖는 재판이 방송으로 생중계되어서는 안 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검찰은 사기사건으로 인한 고소가 많아 정상적인 검찰업무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사기사건 재판을 생중계하여야 국민의 지식이 늘어나 사기피해자가 되는 국민이 감소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의 재판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우수한 사법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는 형국일 수도 있습니다. 공판정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투명하게 보지 못하니 사법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재판의 권위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사법부가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지 그 반대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쟁대상국가인 일본, 중국, 대만은 어떤 상황인가를 말씀드리면서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사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대만에서는 이와 유사한 입법운동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중국에서는 유럽식 참심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참여법안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의도적으로 육성하여 21세기의 무한경쟁시대를 능동적으로 대비하려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수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이 저절로 향상될 때를 기다리려는 법안이 아닙니다. 19세기의 서세동점의 국제정세 하에서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일본국민의 역량이 성장하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역량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메이지 유신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중국과 조선은 그 후 100년의 근대사를 아주 어렵고 힘들게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참여법안에 힘을 실어주시기를 다시금 부탁드리면서 의원님의 건승과 의원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2월 20일
심희기 드림 (연세대 법학부 교수)
심슨 사건에 대한 평가는 미국 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고 향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므로 짧은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드릴 터이니 법안을 심사하시는데 참고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죄평결이 난 이유 배심원들은 왜 무죄평결을 내렸을까요? 변론이 종결된 후 배심평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또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습니다. “배심원은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무죄평결을 하여야 합니다. 유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란 모든 증거에 대한 검토를 마친 후에 기소된 사실에 대하여 ‘단연코 유죄’라고 느낄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한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는 무정추정의 법리가 명시되어 있어 우리 대법원도 이미 1960년대 초반에 ‘유죄로 가정할 때 합리적 의심이 생기면 법관은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도입하여 실무에서 응용하고 있고 모든 형사소송법 교과서에도 이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심슨 사건의 배심원 평결에 영향을 준 이또 판사의 또 하나의 설시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증인이 중요사항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위증한 것으로 판단되면 그 증인의 증언 모두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9개월 동안 진행된 변론과정에서 검찰 측 증인들은 하나같이 의심스런 증언들을 거듭하였고 수사관 중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은 중요사항에 대하여 배심원으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수사관은 나중에 위증죄로 기소되어 형사처벌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수사관들은 매우 허점이 많은 수사를 한 것이며 과학수사연구소의 샘플보관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은 백인 수사관들이 흑인피의자를 유죄로 간주하고 ‘일부의 증거는 조작해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수사와 증거수집에 임한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유능한 변호인들이 조금도 실수 없이 검찰 측 증거의 신빙성을 완벽하게 탄핵한 것도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이또 판사의 설시 중에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공판중심주의(배심원은 이 법정에서 제출된 증거 만에 의거하여 심리하십시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이또 판사의 설시는 미국의 모든 판사가 설시하는 보편적인 내용에 속하는 것입니다. 평의시작 3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한 배심원은 “우리들의 평결이 잘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유죄평결’을 하느니 차라리 ‘잘못된 무죄평결’을 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배심원들은 이또 판사의 지도에 충실히 따른 것이고 그 결과 배심원들은 무죄평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심슨 평결이 잘못이라면 그 잘못은 경찰, 과학수사연구소, 검찰의 몫이 훨씬 크고 배심원의 몫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할까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심슨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직업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판 심슨사건’으로 불린 치과의사모녀 피살사건입니다. 그 사건의 항소심은 사형을 선고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원용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사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판결을 받았지만 제2차 항소심은 유럽의 법의학자가 항소심 공판정에서 증언하도록 허용하는 초유의 선례를 남기며 또다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원용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사가 다시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인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치과의사모녀 피살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의 판단을 두고 오판시비를 벌이는 것은 피고인에게 가혹한 일입니다. 심슨이 유죄평결을 받아야 하는데 무죄평결이 났으니 배심제가 문제 있다고 논평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일 수 있지만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의 법리를 신봉하여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열 사람의 유죄자를 풀어주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의 억울한 피고인을 감옥에 가두어서는 안된다’는 법리를 옹호하여야 할 줄로 압니다. 심슨재판을 오판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공판중심주의와 위법수집증거배제 법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와 위법수집증거배제 법리를 무시하면 다른 측면의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배심원의 오판가능성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직업법관의 오판가능성은 왜 문제삼지 않는가 하는 반론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습니다. 법관들로 하여금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게 하고 일반인으로부터 무작위추출한 배심원으로 하여금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게 하고 그 결과를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신뢰할 만한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비스 인프라가 취약하면 직업법관이나 배심원이나 정확한 재판을 하기 어려운 것은 매일반입니다. 심슨사건을 계기로 배심제의 폐단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배심폐지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런 논의는 패러디나 개탄의 수준에 그치고 있고 입법적 움직임으로 연결된 사례는 전무합니다. 심슨사건에 대한 수많은 논평 중 수사관들의 불법행위(증거의 조작과 위증, 인종적 편견)가 재판을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논평이 가장 많습니다. 검찰 측의 실수와 무성의가 무죄평결을 유도하였다는 논평이 두 번째로 많습니다. 400만 불이 넘는 고액으로 11명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 심슨은 돈으로 무죄평결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평이 세 번째로 많습니다. 배심원 12명 중 8명이 흑인이므로 인종적 편견이 작용하였다는 논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인 대표배심원이 울음을 터트리며 “증거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종적 편견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토양론과 풍토론 의원님의 의견 중에 배심제는 ‘우리나라의 사법토양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배심제는 우리나라의 사법토양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하지 아니한 열린 생각에 경의를 표합니다. 1895년-1897년 사이에 순한글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였던 서재필 선생이 생각납니다. 서재필은 열강이 각축하는 환경에서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려면 부국강병을 꾀하여야 하는데 그 첩경은 의회를 만들어 국사를 논의하고 서구식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런 주장이 황권을 위협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자 서재필은 국민주권주의를 수정하여 군주주권론으로 변경하였고 독립협회 활동으로 민주역량이 함양된 개명 엘리트가 참여하는 의회(중추원) 구성을 구상하였습니다. 서재필이 서구식 국민주권론을 군주주권론으로 변경한 것은 그에게 1890년대 후반의 조선의 풍토는 국민주권을 시행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서재필의 ‘개명된 군주주권론’조차 위험하게 생각하여 그를 추방하였습니다. 그 후 고종과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재의 참여법률안은 미국식 배심제와 비교하면 배심원의 오판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한 법안입니다. 그것은 비유하여 말하면 서재필의 군주주권론과 유사한 법안입니다. 그렇듯 국민의 능력을 의심하고 오판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법안을 앞에 두고 직업법률가들은 한층 더 국민의 능력을 의심하고 오판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현재 부국강병한 나라(예를 들어 G8국가를 들어 봅시다) 중에 배심제나 참심제를 도입하지 아니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대한민국도 무역규모 12위의 큰 나라입니다. 의원님을 비롯한 개명된 지도자들의 현명한 지도력 덕택으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룩하여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유신정권이나 신군부 정권은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구실로 대통령직선제는 대한민국의 풍토에 맞지 않는다면서 체육관 대통령시대로 후진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이 200년 이상 전에 시작한 배심제를 21세기의 한국인들이 소화할 능력이 없다거나 민도가 낮다거나 하는 식으로 매도한다면 향후 언제쯤이 적당한 시기가 될까요? 토양이나 풍토를 거론하는 논증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대한제국 위정자의 어두운 국제정세파악과 유사한 정세파악이 아닐까요? 또 토양이나 풍토를 거론하는 논증을 존중하여 제1단계 국민참여법률안에서는 극히 소수의 중죄사건에 한하여 피고인에게 배심재판을 선택하는 권리를 주었고 배심평결은 직업법관이 뒤집을 수 있습니다.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하여 1일 평결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수많은 모의재판을 수행하여 점검하였습니다. 국민은 이제 ‘사법의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의원님의 지적 중 ‘국민들의 사법서비스에 대한 변화 욕구’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민참여법률안은 이미 그런 차원을 넘어선 국민의 요구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입법에도 참여하고 행정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왜 사법에는 참여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제 ‘사법의 객체’가 아니라 ‘사법의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고 아무리 ‘사법서비스를 개선하라’고 요구하여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도달한 결론이 사법참여입니다. 심슨사건에서 한국인이 주목해야 할 것은 ‘배심제의 폐단’이 아니라 미극 사법제도의 개방성과 투명성입니다. 심슨재판은 라디오와 티브이로 생중계되어 미국인들의 법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습니다. 심슨재판은 세계인들에게 미국사법제도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여지없이 과시한 재판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번도 재판과정이 생생하게 중계된 적이 없습니다. 지금 국회방송이 있어서 의원님들의 법안심의과정은 투명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폭행 사건을 제외하고 국민이 관심을 갖는 재판이 방송으로 생중계되어서는 안 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검찰은 사기사건으로 인한 고소가 많아 정상적인 검찰업무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사기사건 재판을 생중계하여야 국민의 지식이 늘어나 사기피해자가 되는 국민이 감소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의 재판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우수한 사법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는 형국일 수도 있습니다. 공판정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투명하게 보지 못하니 사법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재판의 권위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사법부가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지 그 반대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쟁대상국가인 일본, 중국, 대만은 어떤 상황인가를 말씀드리면서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사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대만에서는 이와 유사한 입법운동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중국에서는 유럽식 참심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참여법안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의도적으로 육성하여 21세기의 무한경쟁시대를 능동적으로 대비하려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수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이 저절로 향상될 때를 기다리려는 법안이 아닙니다. 19세기의 서세동점의 국제정세 하에서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일본국민의 역량이 성장하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역량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메이지 유신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중국과 조선은 그 후 100년의 근대사를 아주 어렵고 힘들게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참여법안에 힘을 실어주시기를 다시금 부탁드리면서 의원님의 건승과 의원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2월 20일
심희기 드림 (연세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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